<일식 (L'Eclisse)> : 무언(無言) 의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카메라의 앵글은 곧 감독의 "의도된" 시각이다. 그리고 이 의도에는 비주얼을 통한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담겨 있다. 언어를 통한 나레이션 기법에서 탈피, 무언(無言)의 비주얼 나레이션으로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할 때 카메라는 곧 감독의 메시지 전달자 역할을 한다. 그리고 카메라가 담아내는 앵글과 컷, 그리고 그 시퀀스가 완벽한 조합을 이룰 때, 무언(無言)의 메시지는 유언(有言)의 메시지보다 더 강한 전달력을 갖는다.

영화 <일식 (L'Eclisse)>(1962)을 최근 크라이테리언에서 출시한 DVD를 통해 다시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그 옛날 VHS 테잎에 비해서 월등하게 나아진 화질과 음질, 그리고 제대로 된 화면비를 통해 <일식>을 다시 감상하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 중 하나가 바로 이 무언(無言) 의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안토니오니 감독의 1962년작 <일식>은 <정사(L'Avventura)>, <밤 (La Notte)>과 함께 이른바 그의 "고독과 소외의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에 속한다. 이전 작품들에서도 카메라워크가 그 빛을 발하고 있지만, 특히 <일식>에 이르면 더욱 정제된, 그리고 무언의 상징적 비주얼들이 영화를 이끌어간다. 영화 도입부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앵글의 컷, 그리고 배경음악 없이 카메라의 시선 이동만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는 시퀀스는 영화 마지막에 다시 한번 등장한다. 이는 데칼코마니처럼 완벽한 좌우대칭은 아니더라도, 영화의 시작과 끝을 동일한 시퀀스로 구성하여 무언(無言)으로 시작된 메시지를 역시 무언(無言)으로 마감함으로써, 감독은 무언(無言)의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이 지닌 효과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오프닝 크레딧이 끝나면, 영화는 갑자기 모든 소리가 사라지면서 어떤 실내의 한 부분을 클로즈-업으로 잡은 샷으로 시작된다.

이후 전개되는 장면들은 아무 소리 없이, 실내 공간의 부분 부분만을 보여주면서 전체적으로 무겁고, 답답하고, 암울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특히, 무겁게 드리워져 있는 커튼을 화면에 적절히 배치, 이러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헤어지기 직전의 영화 속 두 연인의 심정처럼, 관객들 또한 이러한 화면 시퀀스를 통해서 심정적 동질감을 경험한다.




여기서, 만일 이 다양한 앵글의 컷들이 단지 컷의 나열으로 끝났으면, 영화는 그 흐름이 순간 순간 끊기면서 자연스러운 감정이입을 도리어 방해했을지 모른다.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과 카메라워크가 돋보이는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카메라는 물 흐르듯 이 모든 컷을 하나의 연결 시퀀스로 담아내면서, 담담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메시지를 전하면서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는 것이다. 부분 부분만을 보여주던 카메라가 처음으로 줌-아웃되면 이 긴장감은 노골적으로 화면 전체를 짓누른다. 그리고 그 답답한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듯, 무겁게 드리워진 커튼이 그 배경을 이룬다.

답답한 마음에 커튼을 살짝 젖혀보기도 하지만....

영화는 아직까지 이 갈등의 탈출구를 제공하지 않는다.

여주인공역의 모니카 비티가 이윽고 마음을 정리하면서, 그 정리된 생각은 답답함에서 벗어나려는 행동으로 이어지고,그 행동은 무겁게 드리워진 커튼을 걷어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다른 창가의 커튼마저 걷어내면서 모니카 비티는 마음의 정리를 끝내는 듯 하다.

그러나, 남자(프란시스코 라발)는 아직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았다. 헤어지기에는 아직 미련이 남아 있다. 그래서 다시한번 사랑을 확인하려 한다. 이 장면의 뒷쪽을 유심히 살펴보라. 감독은 의도적으로 아직 드리워져 있는 커튼을 배경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직까지 정리되지 않은 한쪽의 심리상태, 따라서 아직은 무겁게 드리워져 있는, 해소되지 않은 갈등의 표현이다.

남자의 질문에 모니카 비티가 대답하는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이동한다. 그리고 배경은 젖혀진 커튼이다. 그녀의 심리상태다. 즉, 남자의 미련과 관계없이, 그녀의 마음은 이미 정리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모니카 비티는 확실한 대답을 회피하면서 그냥 "모르겠다"고만 말한다. 확신이 실종된 현대인의 한 단편이다.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서 다루고자 했던 현대인의 공허한 심리상태, 확신도 신념도 없이, 자기정체성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모습이 이 "모르겠다"는 말에 집약되어 있다. 후에 모니카 비티가 알랑 들롱과 사귀게 될 때, 자신의 결혼신청에 대해서 우유부단한 입장을 보이는 모니카 비티에 대해서 알롱 들롱이 그녀를 힐난하면서 사용하는 말이 또 이 "모르겠다"이다. 너는 왜 매사에 다 모르겠다고만 그러느냐... 참으로, 역설적이다. 이 말은 주식중개인으로서 알롱 드롱 그 자신이,
고객들이 주식시세의 전망에 대해서 물어올 때마다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영화 도입부를 길게 차지했던 모니카 비티와 프란시스코 라발의 관계는 여기서 정리된다. 다음 장면처럼.

이후 모니카 비티가 프란시스코 라발의 집을 나서는 장면부터, 감독은 의도적으로 극도의 롱샷을 사용한다.

이는 감독 자신이 다루고자 했던 주제, 즉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를 화면에서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장면이다. 연인과 헤어지고 난 후 모니카 비티의 모습은 화면에서 극도로 왜소하게 처리되고 있다. 바로, 소외된 현대인의 모습. 이와는 대조적으로, 처음의 롱샷에서 화면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비주얼은 바로 현대문명을 상징하는 거대한 탑이다.
바로, 무언(無言) 의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이 감독의 모든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장면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이 도입부의 시퀀스는 영화 마지막에, 오히려 더욱 더 상징적인 메시지를 담고 그대로 다시 재현된다. 말보다 영상이 더욱 많은 것을 얘기해 줄 수 있다면, 그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이 영화, <일식>이다.

by 8½이다 | 2005/04/18 09:46 | 영화를 봤는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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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8½이다 at 2005/04/18 13:36
영화를 분석적으로 보는 걸 제일 싫어하면서, 글은 이렇게 분석적으로 쓰고 있으니 이 무슨 아이러니.
Commented by oculus at 2005/04/18 19:08
분석적인 것을 싫어하시는 영수형께서 이렇게 쓰신 것을 보면 확실히 이 영화가 모더니즘 계열의 영화인가 봅니다(웃음). 깔끔한 분석에 딱 맞는 스크린 캡춰, 영화를 한 눈에 쏙 들어오게 하는 감상기로 영수형의 내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네요. 조만간 이 동네에서 소문나지 않을까 싶습니다(앗...엠디엘에 홈페이지에 드디어 블로그를 공개하셨네요. 제가 한 번 홍보를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는데요. 이런 좋은 글은 역시 여러 사람이 나눠야 합니다. 정말 잘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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