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윙 걸즈 (Swing Girls)> : 영화와 만화의 크로스오버

일본의 서점에 들어가 보면, 가장 큰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만화. 우리는 주로 이른바 '만화가게'에 가서 만화책을 빌려보는 반면, 일본인들을 돈을 주고 사서 본다. 이는 그만큼 만화가 일본에서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확실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일본인의 독서열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틈나는대로 무엇인가를 읽는다. 전철의 경우도 마찬가지. 책 읽는 승객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에게 낯선 풍경 하나는, 만화책을 펼쳐들고 읽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 어떻게 '만화책 같은 것'을 사람들 많은 곳에서 대놓고 볼 수 있는가. 민망하게시리... 그러나, 이는 우리의 편협된 시각에 불과할 뿐이다. 공부를 해야지, 만화책은 무슨!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란 우리의 상식으로 볼 때 낯설게 느껴지는 것일뿐 일본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만큼 만화가 일본인들의 생활 속에, 그리고 의식 속에 일상적인 문화행동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말해 준다.

특히, 전후 일본세대들은 만화와 함께, 그리고 만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에게 만화는 생활의 일부다. 심지어, 만화가 생활 그 자체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만화 속의 세계와 현실세계간의 경계가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오타구, 카스튬 플레이... 모두 그런 배경에서 비롯된 사회적 현상에 다름 아니다. 만화가 미치는 영향에서 영화도 예외일 수 없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의식 속에 만화 문화가 깊숙히 뿌리박혀 있는데, 어떻게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영화의 물리적 속성 중 하나는 '연속적인 움직임'이다. 즉, 동영상이다. 만화를 동영상으로 표현한 애니메이션이 일본에서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그리고 이토록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러한 만화 문화의 영향이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만화의 영향이 비단 애니매이션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앞서 얘기했듯 동영상이다. 반면, 만화는 정지된 그림이다. 두 매체간의 이러한 표현적, 물리적 속성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일본영화에서는 영화와 만화의 크로스오버를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영화 속에 만화 그 자체가 녹아 들어간 경우를 한번 살펴보면, 우선, 만화적 상상력의 영화화를 들 수 있다. 만화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 즉, 상상력의 한계가 없다. 이러한 상상력을 영화로 그대로 옮겨와서 표현하는 것, 이것이 만화적 상상력의 영화화다. 주로 영화의 컨텐츠, 즉 시나리오 측면이 여기해 해당한다. 다른 한편으로, 영화에서 만화적 표현기법을 차용하는 경우를 들 수 있는데, 오늘 얘기의 주제는 바로 이것. 그리고 등장할 영화는 <스윙 걸즈 (Swing Girls / スウィングガールズ)>.


과함은 부족함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무리수를 두게 되면 대부분 부정적인 결과가 나온다.
만화적인 발상, 만화적인 소재, 만화적인 상상력, 그리고 만화적인 표현에 이르기까지, 만화에 다름아닌 영화가 한 편 있다. 바로, <지옥갑자원 (地獄甲子園 / Battlefield Baseball)>. 영화라기보다는 차라리 영상 만화에 가까운데, 욕심이 과했다. 너무 무리하게 몰아붙인 결과, 영화도 아니고 만화도 아닌, 어정쩡한 영상물이 되고 말았다. 억지는 곤란한 것이다.

반면에, <스윙 걸즈>는 만화적 표현을 참 적합한 곳에, 그리고 참 적절하게 차용하고 있다.
주인공들이 악기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산에 버섯을 깨러 가는데, 여기서 뜻하지 않게 우리에서 도망친 멧돼지와 만난다. 멧돼지가 덥치자 모두들 혼비백산, 이러저리 도망치면서 한반탕 소동이 일어나는데, 감독의 이 장면 처리가 돋보인다. 과장된 액션으로 (만화) 도망치는 주인공들과 멧돼지를 스톱모션으로 처리하면서 (만화), 카메라는 계속 움직인다 (영화). 게다가 멧돼지는 소품 처리되었고, 자세히 보면, 스톱모션 컷에 2D 입체효과를 주었다 (만화 + 영화).
그리고 이 때 흐르는 배경음악. 모든 것이 더 이상 완벽하게 맞아 떨어질 수가 없다.


이 장면을 실사로 처리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단언하건데, 지금 효과의 1/3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이 테크닉이 이 영화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TV의 코메디 프로그램에서 사용된 적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테크닉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세련됨과 완성도이다. 감독은 영화의 흐름상 가장 적합한 장면에서, 만화적 표현기법을 세련되게 차용, 그 극적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이 장면의 백미는 마무리 부분이다. 말 그대로, 만화적 표현의 완성. 더 이상 깔끔할 수가 없다. 만화적 상상력, 만화적 표현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장면이다.

부가가치란 말 그대로 가치가 더해진다는 뜻. 이른바 시너지 효과. 만화적 표현의 차용을 통해 감독은 자신의 코메디 영화가 더 코믹해질 수 있는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면서, 만화와 영화의 크로스오버를 멋지게 소화해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진 <워터보이즈> 등을 통해 그동안 코메디 장르에서 자기만의 색깔을 다져온 야구치 시노부 감독은 이 <스윙 걸즈>를 통해 멋지게 스윙, 또 한번 도약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

by 8½이다 | 2005/04/13 08:49 | 영화를 봤는데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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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oculus at 2005/04/13 13:21
라틴 영화가 아니라 일본 영화들이 계속 올라오다니 뜻 밖입니다. 어째거나 이틀 연속 포스트니 출발이 아주 좋네요(웃음). <69> 볼 때도 그랬는데, 젊은 감독들이 만든 일본영화는 거침없이 시원하게 내지른다는 느낌이 확실히 우리나라 영화보다 강한 것 같습니다. 그게 말씀하신 바와 같은 만화적 상상력일 수도 있겠네요. 어제 엠디엘 영화정보를 보니 다케나카 나오토도 나오고 <조제...>의 그 아이도 나오는군요. 저도 보고 싶습니다. 기회를....히히히
Commented by 8½이다 at 2005/04/13 14:47
읔... 그 사이에 다녀가다니...^^ / 다케나카 나오토... 이 영화에서도 결코 실망을 시키지 않는, 그 열정적(?) 연기. 무난하게 유쾌해. 토요일날 4월 상영회 때 그럼 접선을.
Commented by JackBauer at 2005/04/19 15:57
개봉영화도 아닌것이 어느날부터 엠디엘 핫고구마로 등장해서는 끼지도 못하는 이야기에 괜한 심통과 호기심만 유발하는구나 했더니 그 줄기의 가장 큰 근원이 이곳(분)이었구나 싶네요. ^^ 언젠가 보게 된다면 덕분에 고개 끄덕끄덕 할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승민님 블로그에서 링크타고 왔어요. 최근 두분 모습이 유난히 도란도란 보기 좋구나 했더니 이런 긴밀한 도킹이 있었군요. 와하- 축하드립니다. 근데요... 승민님 블로그와 똑같은 스킨을 쓰시다니요. 칼라에 구조까지. 무슨 커플 블로그래요? 푸히히.
Commented by JackBauer at 2005/04/19 16:37
아무래도 마지막에 좀 까분거 같아서 다시 왔습니다. 정정해야 할 것 같아서요. / 승민님 블로그와 너무도 흡사하여 간혹 혼동스럽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유독 이 스킨만이 마음에 들었을 뿐인데 별 참견이다 싶으시면 사뿐히 무시해 주세요. / 그치만... 바꾸는 게 아무래도. (후다닥)
Commented by 8½이다 at 2005/04/20 12:50
무슨 말씀을... 정인 님 글을 읽다보면 저절로 미소지어질 때가 많습니다. 항상 재치가 넘치시는 듯 해서...^^ / 아, 스킨은 의도적으로 그런 건 아닌데, 지금 보니까 똑 같군요. 그냥 심플한 걸 찾아서 한 건데, 똑 같다니... 음... 음... (난감해 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무래도 곧 조치를. / 들러주셔서 고맙고, 정인 님도 겸사겸사 이곳에 블로그를 하나 오픈하시는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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