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와 김기덕

홍상수의 <극장전>과 김기덕의 <활>을 연속으로 보았다.

홍상수는 언제나처럼 일상의 디테일을 적절하게 살려내면서 이야기를 끌고 나갔고, 김기덕은 추상적 상징을 영화의 바탕에 깔고 있었다. 그리고 두 감독 모두 자신만의 스타일과 작품관을 더욱 굳히기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그런데 두 감독 모두에게 공통으로 보이는 점 한 가지는, 그들의 세계가 아쉽게도 아직은 완전하게 영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제 문턱을 넘어서기는 했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다고나 할까.

일본의 구로자와는 자기의 머리 속에는 일본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이 공존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보면 이 말에 100% 공감이 간다. 반면에, 오즈의 경우는 철저하게 일본적인 것, 평범한 일본인들의 일상적인 삶이 그의 영화 속에 녹아 있다. 뜬굼없이 이 두 감독의 얘기를 갑자기 왜 꺼내느냐. 김기덕의 <활>은 한국적인 소재를 영화에 끌어들이고는 있지만, 100% 한국적이지도 않고, 한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지도 못하고 있다. 즉, 김기덕은 한국적인 것을 그저 영화에서 소품으로 활용하고 있을 뿐, 그 이상의 확장은 이루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펠리니처럼 추상적 상징성의 실체도 아직은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심하게 얘기하자면, 김기덕의 <활>은 상징의 클리쉐에 머물고 말았다.

그리고 홍상수의 경우는 오즈와 브뉘엘의 모호한 경계선상에 있다는 느낌이다. 홍상수의 <극장전>은 일상을 다루고 있으되 그 깊이가 아직은 깊지 않고, 판타지적인 특성이 어느 정도 녹아 있으되 아직은 완전히 용해되지 않았다.

척박한 대한민국의 영화적 환경에서, 감독이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 그럼에도 지금까지 뚝심있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김기덕과 홍상수였기에, 거는 기대가 더 큰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었던 모양. 사실, 두 작품을 동시에 보면서, 홍상수보다는 김기덕에 대한 실망이 더 컸다. 김기덕은 영화제용 감독으로 포지셔닝할려고 그러는가. 대답은 잠시 유보하고, 다음 작품을 기다려 본다.

by 8½이다 | 2005/09/23 13:44 | 영화를 봤는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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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oculus at 2005/10/04 16:56
저도 대체로 동의하는 바인데, 김기덕 감독 영화는 <봄, 여름, 가을....>을 빼면 제대로 본 작품이 없어서 말하기가 조심스럽네요. 간혹 관객과의 대화 등에서 들리는 소문이나 시사회 없는 단관 개봉으로 국내 평단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것을 보면 김기덕 감독은 (좋지 않은 의미로) 고집이 점점 더 세지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누군가를 의식하는 듯한 소재를 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콤플렉스와 자신감이 묘하게 혼재된 상태인 듯 싶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Commented by 8½이다 at 2005/10/06 05:46
그치? 그러다가 언젠가는 완전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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