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9월 10일
중국 우루무치 - 홍산공원(紅山公園)
8월 26일 일요일 아침 7시. 간단히 샤워를 하고, 호텔비에 아침식사가 포함된 조건이었으므로 고민할 필요없이 호텔 부페 식당으로 직행. 딤섬[만두]과 볶음면이 입맛에 맞는다.
8시 30분경 홍산공원으로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서다. 아침은 아침인데, 약간은 새벽 느낌 나는 아침이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은 베이징 시간대를 기준으로 전중국을 하나의 시간대로 묶어 버렸는데, 사실상 베이징과 우루무치 두 도시는 거의 2,500Km나 떨어져 있고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시간대 역시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즉, 베이징이 우루무치보다 두 시간 정도 빨리 간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베이징 시간 아침 10시가 우루무치에서는 사실상 아침 8시인 셈이다. 모든 공식적인 시간은 베이징 시간을 기준으로 하지만, 신장 자치구에서는 비공식적으로 베이징보다 두 시간 느린 신장 시간이 같이 사용되기도 한다. 따라서, 현지인들과 시간 약속을 할 때 베이징 시간인지 신장 시간인지 한번 정도 더 확인해서 손해 볼 일은 없겠다.
아침 공기가 기분좋게 선선하다. 누가 여기를 열사의 땅이라 하는가,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홍산공원을 어떻게 가야 하나... 정답은 하나. 택시. 기본요금이 6元, 우리 돈으로 780원 정도이다. 중국 돈 1元 = 우리 돈 130원 정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 기본 요금이면 우루무치 시내 웬만한 곳은 다 다닐 수 있다.
홍산공원(紅山公園)은 그 이름 그대로, 홍산(紅山)에 만들어진 공원이고, 홍산은 다시 한자어 그대로 붉은 산이라는 뜻. 붉은 색 암벽으로 이루어진 산이라고 해서 붉을 "홍(紅)" 자를 이름에 사용했단다. 홍산은 우루무치에서 볼만한 경치 10경 중 하나.
상당히 오랜 기간 녹화사업을 해 온 홍산공원은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안내판을 보니 홍산의 해발 고도가 910.6미터라고 되어 있는데, 선선한 아침 공기를 즐기며 느릿느릿 걸어 올라가기에 딱 좋다. 경사가 가파르거나 그런 것도 없고, 정상까지의 길은 완만하게 이어진다. 사람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삼삼오오 모여서 잡담을 나누는 사람들도 있고,
공원 내 체육시설에서 운동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고,
누가 중국 아니랄까 봐, 태극권 하는 모습도 보인다.
오호, 테니스 공을 노란 줄로 라켓에 묶어, 산책로를 걸으면서 혼자 연습하는 할아버지도 있다. 게다가, 카메라 오케이? 했더니 포즈까지 잡아주는 저 센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한쪽 다리를 나무에 걸치고 스트레칭하는 노인분들. 유연하기도 하시지...^^
공원 벤치에 앉아 열심히 악기 연습을 하시는 할아버지. 그런데 소리가 좀...^^:;
이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고함소리. 사진에 사운드 저장 기능이 없는 게 아쉽다. 이 아저씨, 노래 연습을 하시는 듯. 고래고래, 악- 악- 
정상으로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 조금 걸어 올라가다 보면 우측에 절이 하나 나타난다. 대불사(大佛寺).
안으로 들어가려니, 입장료를 받는다. 쳇 - , 돈 내고 들어갔다.
절 왼편에 있는 종이 아주 인상적이다.
사찰 안쪽에는 이런 무시무시한 모습의 수문장(?)이 탁 버티고 있는데...
반대편에서는 이렇게 열심히 보수 작업을 하고 있는 아저씨 모습도 보인다...^^:; 이 사진 찍다가 사찰 관리인에게 들켜서 혼났다. 험한 인상을 쓰면서 중국말로 %$^&@#&**@#&*((@#... 나도 그래서 한국말로, 에이, 쫀쫀하게... 사진 한 장 찍은 거 가지고 뭘 그러십니까. 아자씨, 뜻밖의 한국어에 멍한 표정. 피차 못알아들었으니 피장파장.
안쪽에 대웅보전이 있다.
대불사를 빠져 나왔다. 산책로 주변에는, 우리나라 유원지처럼 여러 장사꾼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렇게 음료수와 간식거리를 파는 노점상도 있고
가운데 둥근 통 안에 공을 몇 개나 집어넣을 수 있나, 들어간 공 갯수에 따라 상품을 주는 아저씨도 보이고...
자, 자, 그네에 앉아 공작과 기념 사진들 찍으세요. 얼마나 훈련이 잘 되어 있는지 꼼짝을 안해서 그렇지, 노란 그네 양쪽에 있는 공작 두 마리, 진짜 공작이다.
할아버지, 옛날 중공군 때 실력을 살려서 -
이밖에, 조금은 조잡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여러 조형물들도 곳곳에 설치해 놓았다.
정상에 거의 이를 때 쯤 나름 멋있게 생긴 전각이 시야에 들어온다.
1992년에 세워진 3층 높이의 원조루(遠眺樓)다. 여기 3층에 올라가면 우루무치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고. 들어가 볼까 했더니, 또 입장료를 내란다. 에잇, 치사한 것들, 안들어가고만다. 계속 직진. 무슬림 할어버지들이 한가롭게 앉아 있는 정상 부근, 흰 동상 하나가 시야에 들어 온다. 바로 임칙서(林則徐, 1785~1850)의 동상이다.
한번 쯤은 들어 봤을 이름, 영국 동인도회사. 청나라 말기, 애네들이 중국과 무역을 하면서 중국으로부터 홍차를 수입해서 영국으로 가지고 갔는데, 이 차가 영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끈다. 무역이란 게 원래 사고 파는 균형이 잘 맞아야 이른바 무역 적자를 보지 않는 법인데, 영국은 중국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차를 수입해 가는 반면 중국에 팔 물건은 변변찮았다. 그 결과, 영국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심각한 적자를 면치 못해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인도에서 목화와 "아편"을 들여다 팔게 된다.
우리가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홍콩 영화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아편은 삽시간에 중국 전역에 퍼져 나갔고, 심지어는 군대에서도 아편 중독자 수가 급증한다. 아편과 아편 밀수는 곧 중국의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고, 중국 황제는 급기야 아편금지령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이미 중국 전체가 아편에 중독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황제의 아편금지령은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한 채 유명무실해지고 만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한 가지, 영국의 아편 수출을 막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 때 임칙서가 등장한다.
아편의 폐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임칙서는 중국 조정에서도 가장 강경한 아편금지론자였는데, 황제는 그를 흠차(欽差, 즉 全權) 대신으로 임명하여 영국과의 아편 담판을 벌인다. 당시 중국의 무역항이었던 광저우에 파견된 임칙서는 영국 상인들로부터 아편을 강제로 몰수하는 등 아편을 근절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 이게 영국의 비위를 단단히 건드리게 된다. 영국은 중국에 임칙서의 파면을 강력이 요구하고, 그 결과, 임칙서는 카자흐스탄과의 국경 인근 도시로 좌천되고 만다. 그러나 영국은 이에 그치지 않고 아편 문제를 핑계 삼아 전쟁을 일으키는데, 이것이 바로 아편전쟁이다.
아편 추방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변방으로 쫒겨온 임칙서는 이곳 홍산에 올라 자신의 비통한 심경을 시로 남겼다고 하는데, 그 시가 동상의 뒷편에 적혀 있다. 임칙서는 후에 민족영웅으로 받들여지고, 이곳 홍산에 올라 왔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동상까지 건립되는데, 그 옛날 홍산에 올랐을 때의 비통함이 이 젊은 중국인 커플의 재롱에 어느 정도 달래질 수 있으려나.
임칙서 동상 옆에는 정상으로 올라가는 비탈길이 있는데, 이 길의 난간에 수도 없이 많은 자물쇠들이 걸려 있다.
자세히 보면, 자물쇠에는 날짜도 새겨져 있고, 이름도 보이고, 심지어는 하트 모양의 자물쇠도 있다.
그렇습니다, 이게 바로 애정쇄(愛情鎖), 즉 사랑의 자물쇠 되겠습니다. 중국에서는 연인들이 서로 사랑의 서약을 할 때 이 애정쇄를 많이 이용하는데, 철수♥영희 같은 문구를 자물쇠에 새긴 다음 그 자물쇠를 난간에 채우고나서 열쇠는 저 멀리 던져 버린다고. 열쇠가 없으니 자물쇠는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이고, 영원히 열리지 않을 자물쇠처럼 두 사람의 사랑도 영원하라는 바램과 함께.
각설하고, 이 난간을 따라 위로 올려다 보면 9층 높이의 붉은 탑이 시야에 들어온다.
홍산보탑(紅山寶塔)으로 불리기도 하는 진용탑(鎭龍塔)이다. 1788년에 세워진 이 진룡탑은 전설을 품고 있는데, 우선 진용탑의 한자를 한번 살펴보자. 진(鎭)은 진압할 진, 용(龍)은 우리가 아는 드래곤, 그렇다면, 용을 진압하는 탑?
아주 아주 먼 옛날에, 우루무치에서 그리 멀지 않은 천산(天山)의 천지(天池)에 못된 붉은 용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단다. 이 용이 매년 우루무치 쪽으로 날아와서, 우루무치를 가로지르던 강을 휘젖어 놓아 큰 홍수가 나게 만들었는데 이를 참다 못한 주민들이 서왕모(西王母)에게 살려 주세요, 제발 이 못된 용을 물리쳐 주세요, 하고 간청을 했드란다. 서왕모가 이에 비녀로 그 용을 두 동강 내서 한쪽 몸뚱아리는 이곳 홍산에 그리고 다른 몸뚱아리는 야마크산에 묻어서 사건을 해결. 아, 근데, 그 후에도 강물이 가끔 범람하는 일이 생겼는데, 사람들은 이 놈의 용이 죽어서도 길들여지지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서, 청나라 총감에게 다시 사건 해결을 의뢰. 청나라 총감은 이에 용을 기들이기 위해 홍산과 야마크산의 정상에 두 개의 진용보탑(鎭龍寶塔)을 세웠는데, 글쎄, 그 다음부터 강물이 범람하는 일이 없어졌다고. 야마크산에 세워진 보탑은 오래 전에 허물어져 지금은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고, 홍산의 보탑은 바람으로 인해 쓰러졌던 것을 다시 세운 것이라고.
아니 그런데, 탑 주변의 보호철책에도 사랑의 자물쇠가...? 하긴, 사랑 앞에 거칠 것이 뭐가 있다더냐. 
윗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 진용탑 뒷편은 천길(?) 낭떨어지인데, 접근하지 못하도록 이렇게 철책이 세워져 있다.
이 정상에서 보면 우루무치 시내가 한 눈에 다 들어온다.
도로변의 큰 수영장 두개 보이시나요? 참 특히하네.
임칙서 동상도 저 아래 편에.
그리고 저 아래 낮은 봉우리 위에 정자도 세워 놓았는데...
그 밑에 보니 웬 케이블카? 운행을 안하던데, 저쪽에서는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 쪽으로 오는 코스도 있었나 보다.
아랫쪽 호수 같은 곳에 사람들이 있는 듯 해서 망원으로 약간 당겨 보았더니, 아하, 저곳에서 낚시를?
홍산공원에서 호텔로 돌아가는 길. 어느 새 햇살이 따가워져 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덥다. 앞서 했던 말 취소. 열사의 땅, 맞나 보다. 심하게 더워진다.
8시 30분경 홍산공원으로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서다. 아침은 아침인데, 약간은 새벽 느낌 나는 아침이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은 베이징 시간대를 기준으로 전중국을 하나의 시간대로 묶어 버렸는데, 사실상 베이징과 우루무치 두 도시는 거의 2,500Km나 떨어져 있고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시간대 역시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즉, 베이징이 우루무치보다 두 시간 정도 빨리 간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베이징 시간 아침 10시가 우루무치에서는 사실상 아침 8시인 셈이다. 모든 공식적인 시간은 베이징 시간을 기준으로 하지만, 신장 자치구에서는 비공식적으로 베이징보다 두 시간 느린 신장 시간이 같이 사용되기도 한다. 따라서, 현지인들과 시간 약속을 할 때 베이징 시간인지 신장 시간인지 한번 정도 더 확인해서 손해 볼 일은 없겠다.
아침 공기가 기분좋게 선선하다. 누가 여기를 열사의 땅이라 하는가,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홍산공원을 어떻게 가야 하나... 정답은 하나. 택시. 기본요금이 6元, 우리 돈으로 780원 정도이다. 중국 돈 1元 = 우리 돈 130원 정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 기본 요금이면 우루무치 시내 웬만한 곳은 다 다닐 수 있다.
홍산공원(紅山公園)은 그 이름 그대로, 홍산(紅山)에 만들어진 공원이고, 홍산은 다시 한자어 그대로 붉은 산이라는 뜻. 붉은 색 암벽으로 이루어진 산이라고 해서 붉을 "홍(紅)" 자를 이름에 사용했단다. 홍산은 우루무치에서 볼만한 경치 10경 중 하나.
상당히 오랜 기간 녹화사업을 해 온 홍산공원은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정상으로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 조금 걸어 올라가다 보면 우측에 절이 하나 나타난다. 대불사(大佛寺).















우리가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홍콩 영화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아편은 삽시간에 중국 전역에 퍼져 나갔고, 심지어는 군대에서도 아편 중독자 수가 급증한다. 아편과 아편 밀수는 곧 중국의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고, 중국 황제는 급기야 아편금지령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이미 중국 전체가 아편에 중독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황제의 아편금지령은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한 채 유명무실해지고 만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한 가지, 영국의 아편 수출을 막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 때 임칙서가 등장한다.
아편의 폐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임칙서는 중국 조정에서도 가장 강경한 아편금지론자였는데, 황제는 그를 흠차(欽差, 즉 全權) 대신으로 임명하여 영국과의 아편 담판을 벌인다. 당시 중국의 무역항이었던 광저우에 파견된 임칙서는 영국 상인들로부터 아편을 강제로 몰수하는 등 아편을 근절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 이게 영국의 비위를 단단히 건드리게 된다. 영국은 중국에 임칙서의 파면을 강력이 요구하고, 그 결과, 임칙서는 카자흐스탄과의 국경 인근 도시로 좌천되고 만다. 그러나 영국은 이에 그치지 않고 아편 문제를 핑계 삼아 전쟁을 일으키는데, 이것이 바로 아편전쟁이다.
아편 추방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변방으로 쫒겨온 임칙서는 이곳 홍산에 올라 자신의 비통한 심경을 시로 남겼다고 하는데, 그 시가 동상의 뒷편에 적혀 있다. 임칙서는 후에 민족영웅으로 받들여지고, 이곳 홍산에 올라 왔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동상까지 건립되는데, 그 옛날 홍산에 올랐을 때의 비통함이 이 젊은 중국인 커플의 재롱에 어느 정도 달래질 수 있으려나.




각설하고, 이 난간을 따라 위로 올려다 보면 9층 높이의 붉은 탑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주 아주 먼 옛날에, 우루무치에서 그리 멀지 않은 천산(天山)의 천지(天池)에 못된 붉은 용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단다. 이 용이 매년 우루무치 쪽으로 날아와서, 우루무치를 가로지르던 강을 휘젖어 놓아 큰 홍수가 나게 만들었는데 이를 참다 못한 주민들이 서왕모(西王母)에게 살려 주세요, 제발 이 못된 용을 물리쳐 주세요, 하고 간청을 했드란다. 서왕모가 이에 비녀로 그 용을 두 동강 내서 한쪽 몸뚱아리는 이곳 홍산에 그리고 다른 몸뚱아리는 야마크산에 묻어서 사건을 해결. 아, 근데, 그 후에도 강물이 가끔 범람하는 일이 생겼는데, 사람들은 이 놈의 용이 죽어서도 길들여지지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서, 청나라 총감에게 다시 사건 해결을 의뢰. 청나라 총감은 이에 용을 기들이기 위해 홍산과 야마크산의 정상에 두 개의 진용보탑(鎭龍寶塔)을 세웠는데, 글쎄, 그 다음부터 강물이 범람하는 일이 없어졌다고. 야마크산에 세워진 보탑은 오래 전에 허물어져 지금은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고, 홍산의 보탑은 바람으로 인해 쓰러졌던 것을 다시 세운 것이라고.











# by | 2007/09/10 01:19 | 여행을 갔는데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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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chante / 중국은 모든 게 너무 빨리 변해서, 10년전에 다녀오셨다면 그런 느낌이 드실 수 있겠네요.
물론 즐거워서 하는 일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