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우루무치 - 도착

이번 우루무치/투루판 여행은 상당히 즉흥적으로 이루어졌지만, 동시에 오랜 기간 염두에 두었던 여행이기도 하다. 20년도 더 지난 듯 하다. NHK에서 제작한 <실크로드 - 중국의 비단길> 중 "사막의 오아시스, 투루판" 편에 나오는 한 장면이 처음 본 순간부터 기억 속에 각인되어, 언젠가는 직접 가서 확인해 보리라 마음 먹었는데 그 후 20년이 흘렀다. 30년 지나지 않은 게 다행.

그동안 중국을 수없이 들락거렸지만, 중국에 대한 개인적 경험은 지극히 단편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횟수와 상관없이, 출장/여행 지역은 늘 베이징, 상하이, 텐진 등 동부의 발달된 도시들이나 남부해안 홍콩과 가까운 광저우, 선전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약간 내륙 쪽으로 들어가 본 경우는 상하이에서 가까운 항저우와 쑤저우뿐. 중국 내륙은 따라서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우루무치(Urumqi)/투루판(Trupan)은 그냥 내륙이 아니라 중국의 서북쪽 끝이다. 이번 우루무치/투루판 여행이 개인적으로 의미를 갖는 또 다른 이유다.
천산산맥과 타클라마칸 사막을 주변에 두고 있는 우루무치[烏魯木齊]와 투루판[吐魯番]은, 그 옛날 천산산맥을 가운데 두고 산맥 북쪽을 가는 천산북로(天山北路), 그리고 남쪽을 가는 천산남로(天山南路)라고 이름 붙여진 실크로드의 중심 도시였다. 당나라의 수도 시안[西安, Xian]에서 출발한 실크로드 행렬이 서역으로 넘어가기 전 우루무치와 투루판에서 한 숨을 돌렸고, 서역에서 중국으로 들어오던 실크로드 행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실크로드를 제대로 여행하려면, 최소한 중국 시안에서 출발, 란저우와 둔황을 거쳐 우루무치와 투루판을 둘러본 후 쿠처와 카슈가르에 이르는 여정을 택해야 하는데, 이 일정이 아무리 짧게 잡아도 10일 이상이다. 따라서 내게는 그림의 떡. 그런데 인천-우루무치 간 대한항공 직항이 있다. 토요일 저녁에 출발, 일요일 새벽에 도착. 그리고 돌아오는 편은 수요일 새벽 출발, 수요일 아침 도착이다. 따라서 월/화 이틀만 휴가 내면 3일 동안 우루무치와 투루판을 중심으로 실크로드 맛보기 여행 정도는 가능하다. 그리고 어차피 전체 실크로드 코스 중 내가 20년전부터 관심 있었던 곳은 투루판 아니었던가. 고, 고!

한국시간으로 토요일 늦은 저녁 8시 20분에 인천을 출발한 비행기가 우루무치 공항에 도착한 것은 현지 시간 일요일 새벽 12시 50분경. 두 나라 사이에 한 시간 시차가 있으니 5시간 30분 정도 걸린 셈이다.

우루무치 공항. 명색이 국제공항이건만, 무지하게 작다. 출국 수속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아마도 제일 먼저 공항 밖으로 빠져 나온 듯. 우선 담배부터. 오래 참았다. 그런데 이상타... 그렇게 덥지가 않다. 오히려 선선하다. 8월 평균기온이 투루판의 경우 40도를 넘어가고, 우루무치도 만만치 않다고 듣고 왔건만 선선하다니. 밤이라서 그런가, 모를 일이다.

여기 저기서 호객꾼들이 몰려든다. 뭐라고 하는지 한 마디도 못알아 듣겠지만, 아마도 시내로 들어가는 차 편이 필요하지 않는냐고 물어보는 듯 하다. 나, 관심없다. 택시 승강장을 보니 기다리고 있는 택시는 딱 한 대. 딴 사람에게 빼앗길라, 어여 가자.

택시 기사에게 한자어로 적어 온 호텔 이름을 보여주니 금방 알아 본다. 현지 호텔은 중국 호텔 예약 사이트를 통해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예약해 두었다. 공항에서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호텔까지는 20Km 정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아서 도착. 그런데 앞으로 계속 같은 경험을 하겠지만, 택시, 참 후졌다. 폐차 일보직전.

호텔 프런트 데스크에 여자 직원 두 명 근무 중. 나는 중국말 안되고, 애네들은 영어가 안된다. 여권과 프린트해서 온 호텔 예약 번호를 보여줬는데... 한참 여기 저기 서류도 찾아보고 컴퓨터도 두들겨 보고 그러더니, 메이요! 그런다. 메이요! 여기서 메이요가 왜 나오나. 내가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중국어 단어 중에 메이요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건 바로 "없다"는 뜻이 아니던가.

어차피 영어로 해도 못알아 들을 터, 그냥 한국말로 하고 있는 나: "짜샤, 다시 한번 잘 찾아봐라. 메이요 아니다. 노 메이요. 이렇게 예약 번호까지 있잖냐."

여기에 곁들여지는 바디 랭귀지. 양 손 검지로 X 자를 만들어 보이면서 "No 메이요!"

그럼에도 호텔 아가씨, 고개만 설레설레 흔든다. 하, 이것 참 난감하네... 하면서 담배를 꺼낸 문 순간, 이 때 등장한 당직 매니저. 다행이다. 아주 조금이나마, 영어가 되는 듯 하다. 그러나 영어 문장으로는 거의 대화 불가능, 영어 단어만 이용해야 한다.

나: "Check, check." (다시 한번 잘 알아봐라)
당직 매니저: "Wait." (기둘려 보세요)

당직 매니저, 열심히 서류를 찾다가 내 예약 관련 서류를 발견. 그럼 그렇지. 그러나 뜻밖의 말이 나온다.

당직 매니저: "No today. Tomorrow." (오늘은 예약이 안되어 있고 내일부터 되어 있는데요?)
나: "No today? No. Today OK." (오늘부터 예약이 안되어 있다니? 그럴리 없다. 오늘부터 예약했다)
당직 매니저: "No. Tomorrow." (아니에요. 내일부터 되어 있어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시츄에이션인가? 가끔은 영어 단어, 가끔은 한자어, 그리고 손짓발짓 해가면서 알아낸 바에 의하면, 내가 도착한 날짜는 8월 26일 새벽 1시 30분. 따라서 25일부터 호텔이 예약되어 있어야 하는데, 온라인 호텔 예약 사이트에서 내가 도착 시간을 26일 새벽 12시 40분이라고 입력했더니, 호텔 예약을 자동으로 25일부터가 아니라 26일부터 한 모양. 26일부터 호텔 예약이 되어 있으면, 나는 26일 점심 시간 이후에 체크-인을 해야 되는 거고, 따라서 지금 26일 새벽 이 시간에는 나에게 예약된 방이 없다. 25일부터 예약된 게 아니니까.

낭패로다. 오기 전에 전화 한 통화 할 걸, 그냥 인터넷 예약만 믿었다가 이 무슨 낭패. 어째, 초장부터 꼬인다. 그나저나, 이 시간에 어딜 가. 예약 상황은 알았으니, 방을 달라고 해야지.

나: "OK. Room?" (상황은 알았다. 방을 하나 다오)
당직 매니저: "Sorry. No room." (죄송하지만 방이 없어요)
나: "메이요? No........." (방이 없다니? 이 무슨 소리냐, 황당하다)
당직 매니저: "Full. Saturday." (주말이라 방이 다 찼어요)
나: "Saturday..." (주말이라서...)

작전을 바꿔야겠다.

나: "Hotel?" (어디, 다른 데 아는 호텔 없냐?)
당직 매니저: "Hotel? Wait." (다른 호텔이요? 기둘려 보세요)

당직 매니저, 어딘 가에 전화를 건다. 그리고는 중국말로 #$@$&%^!%#^%*#*!%#*!#%*!%#*!#%...

당직 매니저: "OK. Yes, room." (네, 마침 다른 호텔에 방이 있네요)
나: "Oh, good." (아이구 잘 되었네)

나: "Hotel. Long?" (그 호텔, 여기서 멀리 떨어져 있나?)
당직 매니저: "No. Five. Taxi." (아니요, 그렇게 멀지 않아요. 택시 타면 5분 정도?)
나: "아리가또... 아니다, 웬 일본말? 셰셰." (고맙다)
당직 매니저: "부커치" (별 말씀을요)
나: " Sleep. Come back. Check-in. OK?" (오늘은 그럼 일단 그 호텔 가서 자고, 이따가 점심 때 이후에 다시 이 호텔로 와서 체크-인 하겠다. 오케이?"
당직 매니저: "OK, OK." (네, 그렇게 하세요)

당직 매니저, 친절하다. 호텔 밖으로 나와서 택시까지 잡아 준다. 5분 후, 전혀 계획에 없던 호텔에 체크-인. 우루무치가 속한 신강위그루자치구에는 그 지역적 특성 때문에 이슬람 문화가 도처에 퍼져 있다. 무슬림들도 많이 산다. 이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 그걸 피부로 느낀다. 호텔 로비 모습.
어영부영 새벽 2시다. 일단은 잠을 좀 자고... 일정은 바꿔야겠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여기서 아침 먹고, 점심 시간 이후에 저쪽 호텔에 체크-인 해야 되니, 오전에는 홍산공원이나 둘러 보자. 그리고 체크-인 한 다음에 오늘은 이도교시장을 비롯 우루무치 시내 둘러보고, 투루판과 천산천지 관광예약도 하고.... 내일 투루판, 마지막날 천산천지. 그럼 남산공원 일정이 날아가는 셈이네? 어쩐지.. 3일은 빡빡하다니까.

by 8½이다 | 2007/09/09 09:56 | 여행을 갔는데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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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Fidelity at 2007/09/10 16:28
아 정말이지 대화가........... 크흐흐흐. 이번 여행은 이런 대화만 주워 들어도 엄청 즐겁겠어요. 히히.
하필 제가 예로 든 그 남산공원 일정이 그리해서 날아가게 되었군요. ㅜ.ㅜ
Commented by 8½이다 at 2007/09/10 17:41
아ㅡ 이 날은 사실 좀 황당했습니다. 다행이 호텔 당직 매니저가 친절해서 위기를 넘겼지, 안 그랬으면 그 꼭두새벽에 말도 안통하는데...
Commented by oculus at 2007/09/10 21:26
첫날 일정부터 좀 어긋나셨나봐요. 그래도 스트레스 풀고 오셨다니 다행이긴 한데요, 이후 일정은 잘 풀리신 게죠?(웃음)
Commented by 8½이다 at 2007/09/18 22:39
뭔가 어긋나는 게 없어도 여행이 재미없지만.........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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