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 템즈강의 다리들: Westminster Bridge

대니 보일 감독의 좀비 영화 <28일 후... (28 Days Later...)>를 보면,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동물들이 거리로 뛰쳐 나온 뒤 28일 후... 의식을 잃었던 짐이 런던의 한 병원에서 깨어난 후 휑~ 한 거리로 나선다. 이게 도대체 뭔 일이냐, 삭막하게 변해 버린 주변에 어리둥절하면서 짐은 비틀거리며 어떤 다리를 건너는데...
영국 런던의 가장 유명한 건물 중 하나인 국회의사당과 높이 95m의 시계탑 빅 벤이 보이는 <28일 후...> 도입부의 다리, 이 다리가 바로 웨스트민스터 브릿지(Westminster Bridge) 되겠다. 참고로, 빅 벤은 <피터팬>, <39계단>, < V 포 벤데타> 등 수 많은 영화에 찬조(?) 출연한 런던의 손꼽히는 상징물이지요. 영화 <28일 후...>는 화질 안좋기로 유명한데, 자, 자, 깨끗한 사진으로 국회의사당, 빅 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브릿지를 한 방에 봅시다. 클릭하면 큰 사이즈.
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77년 런던 템즈 강변의 보행로를 1차 완공한 후 개선 작업을 줄기차게 진행, 즉위 50주년 되던 2002년에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그 결과, 런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템즈 강 구간은 모두 보행로로 이루어져, 그냥 터벅터벅 걸으면서 템즈강의 경관과 그 위의 다리들, 그리고 주변의 역사적인 유적/유물들까지 덤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걷기를 좋아하는(?) 그리고 다리를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는, 이만한 관광 코스가 있을 수 없다.

국회의사당과 빅벤을 뒤로 하고 웨스트민스터 브릿지를 건넌 다음 사우스뱅크 쪽에서 저 멀리 타워 브릿지까지 템즈 강을 따라 걸었다. 아래 지도에서 보면 중간쯤에서 우측으로.
한동안 같은 제목으로 올리게 될 <영국 런던 - 템즈강의 다리들> 포스트는 템즈 강변과 템즈강의 여러 다리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첫번째가 바로 웨스트민스터 브릿지. www.onionmap.com에서 제공하는 입체 도시 지도를 이용, 다리 위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출처를 밝혔으나, 혹시라도 문제될 경우 나중에 삭제.
아주 먼 옛날, 센트럴 런던 지역의 템즈 강 다리는 수 세기 동안 런던 브릿지 하나밖에 없었단다. 당시 런던 브릿지 이외에 템즈 강을 건너려면 호스페리(horseferry)에서 나룻배 같은 걸 타야 했는데, 이게 보통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게 아니라서 무척이나 불편했고, 특히 강 물살이 셀 경우에는 상당히 위험하기까지 했다고. 아래 그림은 잰 그리피어(Jan Grriffier)의 1706년도 작품 "The Thames at Horseferry."
이러한 불편 때문에,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때 템즈 강에 또 다른 다리를 건설하자는 의견들이 많았으나 런던 시의 반대에 부딛쳐 번번히 무산되다가, 1736년, 다리 건설 허가가 떨어진다. 그리고 1739년, 공사가 시작된다. 그러나 재정적인 문제에 당시 유럽에 몰아닥친 혹한과 전쟁, 선원들의 파업, 기타 크고 작은 사건들 때문에 공사는 지지부진, 완공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공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웨스트민스터 브릿지를 그린 작품 한 점이 있다. 카날레토(Canaletto)의 1746년작 "Westminster Bridge." 이 그림을 보면 거의 완공이 된 것처럼 보인다. (그림 윗부분 약간 잘라남)
그러나 1747년, 마무리 공사를 하던 중 다리 일부분에 균열이 가는 바람에 다섯번 째 아치가 무너져 내려 완공은 다시 뒤로 미뤄지고, 그 후 3년 뒤인 1750년에 마침내 개통된다.

공사 기간 내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웨스트민스터 브릿지는 개통 후에도 끊임없는 구설수에 시달린다. 특히, 양쪽 기반이 흔들거리는 등 안전 문제가 의문시 되었는데, 1831년 런던 브릿지가 철거된 이후에는 템즈 강의 흐름에 변화가 생겨 웨스트민스터 브릿지의 기반이 침식되기 시작하는 문제까지 발생한다. 이 때문에 1836년부터 10년 간에 걸쳐 보강작업이 이루어졌으나 태생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어서, 결국 완전히 새로운 다리를 건설하자는 결정이 내려져 1854년 공사가 시작된다. 그리고 1862년 5월, 7개의 아치로 구성된 연철교 형식의 새로운 웨스트민스터 브릿지가 개통된다. 이 다리가 바로 지금의 웨스트민스터 브릿지이다. 웨스트민스터 브릿지는 고딕 양식의 디테일로 마감되어 있는데, 이는 웨스트민스터 궁을 설계한 찰스 배리의 도움을 받아 토마스 페이지가 작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24년 약간의 균열로 인한 보강 공사만 제외하고는 거의 문제가 없었으니, 웨스트민스터 브릿지는 오늘날까지 거의 150여년의 세월 동안 든든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역사를 지닌 웨스트민스트 브릿지는 현재 템즈 강의 런던 지역에서 가장 오래 된 다리.

사진은 웨스트민스터 브릿지의 옛 모습. 국회의사당과 빅 벤이 뒤에 보인다.
그리고 비슷한 각도에서 본 지금의 다리 모습.
빅 벤이 있는 방향의 웨스트민스터 브릿지 끝에는 한 여인이 두 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바로 부디카(Boudicca 또는 Boadicea)의 동상이다. 클릭하면 큰 사이즈.
웨스트민스터 브릿지의 부디카 동상 아래에는 이런 글이 적혀져 있다: 자신의 백성들을 이끌고 로마 침략군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AD 61년에 목숨을 잃은 이케니의 왕비.

부디카는 AD 6세기경 당시 로마에 종속되어 있던 영국의 옛 왕국 이케니의 왕 프라수타구스의 아내였다. 부디카는 남편 프라수타구스가 죽은 후 로마의 횡포가 극에 달하자 이스트 앵글리아 지역에서 군대를 일으며 로마군에 대항한다. 부디카는 로마군을 연파하면서 마침내는 런던으로 진격한다. 이곳에서 그녀는 1만명의 병사로 10만의 로마군을 상대하게 되는데, 전투를 앞두고 로마군에게 했다는 연설이 인상적이다.

"우리 영국인은 전쟁에서 여성 지도자에게 익숙해져 있다. 나는 신의 딸이다. 하지만, 나는 왕의 군대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고, 자유를 빼앗긴 평범한 사람으로 싸우고 있다. 신은 우리에게 복수를 허락하셨다. 얼마나 많은 병사가 싸우고 있으며, 왜 싸우는지 생각해보라. 이 전쟁에서 이길 것이다. 저 로마 병사들을 우리의 노예로 삼자. 나는 결코 그들의 노예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로마군을, 그것도 10분의 1도 안되는 병력으로 맞서 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부디카의 군대는 로마군에게 거의 궤멸당하고 부디카 역시 로마군에 사로 잡힐 신세가 되는데...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부디카는 로마군에 잡혀 굴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기로 하고 독약을 먹고 자살했다고 한다.

영국을 침략한 세계 최강의 로마군에 맞써 용감하게 떨쳐 일어난 부디카의 용맹성과 호연지기는 이후 영국인들의 마음 속에 깊이 자리잡았고, 부디카는 오늘날까지도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엔야의 앨범 "The Celts"에 'Boadicea'라는 동명의 곡이 실려 있는데, 이 곡이 바로 부디카를 기리는 곡.

이제 이야기의 방향을 바꿔서.. 웨스트민스터 브릿지의 외벽은 초록색을 띄고 있는데, 이는 의회의 하원을 상징. 하원의 의석이 초록색이다.
웨스트민스터 브릿지는 항상 관광객들로 붐빈다.
이곳에서 빅 벤도 볼 수 있고,
빅 벤 쪽 다리 아래에는 템즈강 유람선 선착장도 있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도, 런던의 또 다른 명물, 런던 아이가 한 눈에 들어오기 때문. 클릭하면 큰 사이즈.
웨스트민스터 브릿지를 건너 아랫쪽으로 내려오면, 앞서 얘기한 보행로가 이처럼 템즈 강변을 따라 쭉 이어져 있다. 이제, 이 길을 따라 걷는다.


보너스 1: 참고로, 2007년 6월 현재, 웨스트민스터 브릿지는 일부 개보수 작업 중.
보너스 2: 웨스트민스터 브릿지 다리 바로 아랫쪽에 London Aquarium 건물이 있는데, 이곳에 오즈(小津, Ozu) 감독 이름이...? 일본 식당이다. 근데 입구에 웬 스타워즈.

by 8½이다 | 2007/08/08 15:32 | 여행을 갔는데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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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oculus at 2007/08/08 18:33
오즈 식당은 꼭 한 번 들어가보고 싶어요. 혹시 다다미가 놓여져 있지 않을까요? / 맨 위에서 세번째 사진 보고 어떤 분께서 무척 좋아하시겠는걸요. 뜻밖의 장소에서 보셔서 기쁨이 두배가 되실 것 같네요(웃음). / 아직 다 못마친 프랑스 다리 연재도 이어서 해주시는거죠?
Commented by 8½이다 at 2007/08/08 19:51
나도 한번 들어가 보고 싶기는 했는데, 조금 이른 시간이어서 배고 고프지 않겠다... 만들어낼 핑계가 없어서 그냥 포기...^^ / 아, 그러고 보니 그렇군...^^ / 파리 센강의 다리, 런던 템즈강 다리, 뉴욕 맨하튼의 다리들... 다리가 너무 많아...
Commented by Fidelity at 2007/08/09 09:55
시계탑을 빅벤이라고 부르나봐요. (여행 다녀온거 맞니...-_-)
저 시계탑은 개인적으로 영화 <플루토에서 아침을>에서 나왔을때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키튼이 런던으로 왔을때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비가 부슬부슬 오는데 지하철에서 나와서 올려다 보는 곳이 저기거든요. 히히.
그러고보면 킬리안은 빅벤이랑 관련된 영화를 많이도 찍었네요. 흐흐...

런던아이 말인데요. 저는 저거 보면서 템즈강이랑 가장 안어울리는 건축물이라고 생각했어요. 히히.
히잉.... 안어울려도 좋으니까 그래도 다시 가서 보고 싶어요. 결론은 다시 가고프다 런더어어어어어언~~~~~ ㅜ.ㅜ
Commented by 8½이다 at 2007/08/12 18:59
맞아요... 빅 벤만 나오면 사람들이 아, 저기 런던이구나... 하고 금방들 알아보기 땜에 런던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모양입니다. 나중에라도 다시 런던 가실 일 있으면, 꼭, 반드시, 데피니틀리, 템즈 강변을 따라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두루두루 볼 것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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