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벵이

1998년 아니면 1999년 무렵이었을 걸로 기억한다. KBS에서 섭외가 들어와서 KBS 라디오의 한 시사관련 프로그램에 매주 수요일 오후 출연한 적이 있었다. 당시 그 프로그램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은 10분 정도였는데, 내가 맡은 분야는 다름 아닌 "인터넷". 당시만 하더라도 인터넷이 막 급속도로 전파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 인터넷이라는 놈이 어떤 놈이고, 앞으로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그리고 최근 인터넷 트렌드는 어떤지 등등을 소개하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이른바 인터넷 및 인터넷 마케팅 전문가로 초빙(?)된 것이다. 그 때 전문가들 다 어디로 가고, 나에게 섭외가 들어왔는지.

이 이야기를 뜬굼없이 왜 하느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오늘 아침 사무실 내 방을 다 뒤집어 엎으면서 정리를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오래된 녹음테잎 하나를 발견했다. 무슨 내용일까 하고 틀어보았더니, 첫 방송 내용을 우리 비서 아줌마가 녹음해둔 테잎.

당시, 사회자가 질문을 하면 내가 대답과 설명을 하는 그런 진행방식이었는데, 첫 방송 때 테잎을 들어보니, 이런 내용도 있었다.

사회자: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기 전에, 제가 평소에 궁금해 하던 것이 하나 있어서 여쭤봅니다. 전자메일의 주소라고 하나요, 그런 걸 보면, 영어 알파벳 "a" 자를 동그란 원 속에 집어넣은, 흔히 골벵이라고 얘기하는 것 같던데, 이게 무슨 뜻인지요? 골벵이는 아닐 것 같은데 말이죠 (웃음)."

나: "아, 그거는 영어로 '앳'이라고 읽는데, "...에" 라는 뜻을 지닌, 장소를 나타내는 영어의 전치사 'at'를 나타냅니다. 전자메일 주소의 형식을 보면, 이 '앳'을 중심으로 앞 부분과 뒷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뒷 부분의 장소 또는 주소에 있는 '앳' 앞 부분의 어떤 어떤 사람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른바 '골벵이'가 그렇게 개념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았고, 앞으로 '인터넷'이 우리 생활의 모든 것을 송두리 채 바꿔놓을 것이라고 나 같은 사람이 부르짖었던 그런 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피식. 응? 나도, 피식?

by 8½이다 | 2005/07/08 14:19 | 주제는 없는데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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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fidelity at 2005/07/08 15:08
제목만 보고 단숨에 '술을 마셨는데' 올라오는 안주 예찬이구나 했는데요. 피식.

저는 아직도 골뱅이라고 읽습니다. 혼자 잘나서 '앳'이라고 발음하면 날아오는 반응들은 죄다 "엥?" 이니까요.

별로 궁금해 하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이런 얘기 접하면 모하는 분이실까 그노무 호기심이 또 발작을 하는군요. 그보다 어떤 목소리 실려나 부터 궁금했지요.
Commented by oculus at 2005/07/08 16:27
아, 그걸 앳이라고 읽을 수도 있는 거였었군요...사람은 역시 배워야 해요...(긁적긁적)
Commented by 8½이다 at 2005/07/12 11:50
그냥 평범하게 월급 받으면서 회사 다니고 있는 사람입니다...^^ 누가 처음 붙였는지, 이 '골벵이'라는 말, 참 잘도 만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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