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 러시아 국경을 향해서 (4): 다르한 --> 수흐바타르

하늘은 뿌옇게 흐린 채 눈발을 뿌려대고 길은 살짝 얼어 있다. 그리고 주변 풍경은 거의 변화가 없다. 그냥 눈 덮힌 허허벌판의 연속이다.
그렇게 얼마나 달려갔을까, 가이드가 소리친다: 형, 낙타!
집으로 돌아가는 낙타 행렬. 주변에 사람은 없다. 그냥 맨 앞의 우두머리 낙타를 따라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접근해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우두머리가 발길을 멈춘다. 이방인의 출현에 경계를 하는 듯. 가이드가 위험하다고 너무 가깝게 접근하지 말라고 한다. 광활한 벌판에서 모처럼 눈에 띈 생명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클릭하면 큰 사이즈.
다시 출발. 얼마나 갔을까, 길 옆에 웬 할머니 한 분이 서 계신다. 어디를 가시는지, 아마도 얻어탈 수 있는 차를 기다리시는 듯. 이 벌판에서, 그리고 이 추운 날씨 속에서, 언제 지나갈 지 모르는 차를. 가이드에게 차를 세우라고 했다. 궁금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는 가이드. 할머니, 태우고 가자.

할머니가 몽골어로 뭐라고 계속 말씀하시는데, 아마도 고맙다는 뜻인 듯. 가이드에게 어디 가는 길이냐고 여쭤보라고 했다. 할머니 말씀하시길, 오늘이 연금 타는 날인데, 수흐바타르에 은행이 있어서 거길 가시는 길이란다. 지금까지 한 시간 넘게 태워줄 차를 기다리다가 우리 차를 타게 되셨다고.

벌판에 큰 다리가 눈에 띈다. 이렇게 제대로(?) 된 다리를 몽골 벌판에서 만나기 힘들다. 규모도 상당히 크다. 물은 말랐는지 가늠이 어렵지만, 그 밑 나무에 걸려 있는 하닥도 인상적이다.
눈 덮힌 광활한 벌판이 계속되다가, 길 옆에 나무들이 몇 그루씩 보이기 시작한다. 가이드에 따르면, 이곳은 몽골의 곡창지대로 밀 농사를 주로 짓는단다. 밀은 몽골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주식. 빵의 재료일뿐 아니라, 몽골 위스키의 재료이기도 하다. 다르한에서 수흐바타르 가는 길에 찍은 사진들 중 가장 잘 나온 놈. 클릭하면 큰 사이즈.
일행들간에 말싸움이 벌어졌다. 시작은 단순. 아마도 내가 그런 얘기를 한 듯 하다. 몽골이 한국의 왼쪽에 있잖아....

그런데, 가이드가 갑자기 대든다: 에이, 형은 정말 바.보.네. 몽골이 어떻게 한국의 왼쪽에 있어요? 오른쪽에 있지.

나: 바보? 아니, 이 바보가 누구더라 바보래? 임마, 몽골이 한국의 왼쪽에 있지, 왜 오른쪽에 있냐? 넌 지도 볼 줄도 모르냐?

자, 지도를 한 번 보자.
가이드: 봐요, 몽골이 한국의 오른쪽에 있지.

나: 이런 억지가 있나... 아니, 똑바로 봐라, 몽골이 어떻게 한국의 오른쪽이냐. 왼쪽이지!!

가이드, 운전기사 등 몽골사람들: 푸하하하, 한국 사람들 정말 바.보.네.

나 그리고 한국인 일행: 야, 이거 정말 답답하네.

장난이 아니다. 심각하다. 명석한(?) 두뇌를 이용하여 내가 질문의 각도를 바꿨다. 그럼, 몽골에서는 해가 오른쪽에서 뜨냐, 왼쪽에서 뜨냐?

몽골에서는 해가 왼쪽에서 뜬다.

몽골 사람들의 대답은 일사분란하다. 한결같이 똑 같다. 해가 왼쪽에서 떠서 오른쪽으로 진단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한참을 말다툼 하다가 알아낸 진실은, 바로 지도를 보는 문화적 차이였다. 우리는 지도를 눈 앞에 두고 본다. 즉, 아랫쪽에서 윗쪽 방향으로 본다. 따라서 동서남북을 기준으로 하면 오른쪽이 동, 왼쪽이 서, 뒷쪽이 남, 윗쪽이 북이 된다. 우리가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을 그냥 "북"한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방위감각 때문이다. 북한은 우리나라 윗쪽에 있고, 북쪽에 있다. 그리고 해는 오른쪽의 동해에서 떠올라 왼쪽의 서해로 진다. 따라서, 몽골은 우리나라 왼쪽 그리고 윗쪽에 있다.

그러나, 몽골 사람들은 지도를 위에서 아래로 본다. 우리와 반대다. 이 방위감각에 따르면 왼쪽이 동, 오른쪽이 서, 앞쪽이 남, 그리고 뒷쪽이 북이 된다. 해는 왼쪽인 동에서 떠서, 오른쪽인 서로 진다. 몽골의 앞에는 중국이 있고, 뒤에는 러시아가 있다. 그리고 한국은 몽골의 왼쪽 앞쪽에 있다. 그래서 그랬나, 징기스칸이 자손들에게 늘 해주었다고 하는 이야기 한 가지가 생각났다: 앞에 중국이 있다는 것을 항상 잊지마라.

몽골에 가시는 분들은 몽골 사람들에게 꼭 한번 물어보시길. 해가 왼쪽에서 뜨는지, 오른쪽에서 뜨는지.

서로, 바보 아냐? 그러면서 다투는 동안 수흐바타르에 접어 들었음을 알리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은행에 할머니를 내려 드린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은행으로 걸어가시는 할머니. 연금 잘 찾으셔서 따뜻한 설 보내시길. 각설하고, 도착했다, 수흐바타르.

by 8½이다 | 2007/03/15 17:55 | 여행을 갔는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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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강설 at 2007/03/15 23:12
왼쪽,오른쪽 재밌는 얘기네요. 그러고보니 남반구사람들은 지도를 어떻게 볼까요 그쪽에서도 적도가 아래로 가게 볼려나...
Commented by 8½이다 at 2007/03/16 12:47
문화적인 차이라는 게 참 작은 것에 많이 있는 듯 합니다. 오른쪽은 오른쪽이라고 왼쪽은 왼쪽이라고 하는데, 지도 보는 방법만 다르다니,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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