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 러시아 국경을 향해서 (3): 다르한

다르한에 접어들 무렵 가이드가 설명해준 이 도시에 대한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우선, 인구는 10만명 정도. 몽골 제2의 도시라면서 인구가 꼴랑 10만명밖에 되지 않다니... 하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으나, 몽골의 전체 인구가 2백만명을 조금 넘는다는 걸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전체 인구의 5% 정도가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셈 아닌가.

다르한 주변에서는 철광석이 많이 난단다. 그래서 몽골 최대의 제철소가 이곳에 있는데, 지하자원은 있으되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하여 제철소를 설립하기 전 많은 사람을 소련에 보내 교육을 받고 오게 했다고. 공산 시절 소련과 몽골은 형제국가였기 때문에 소련은 인적 자원 육성은 물론 제철소 설립과 다르한 도시 전체 건설에도 전폭적인 지원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때문인지, 다르한에는 아직도 당시 소련과 몽골의 형제애를 강조한 흔적이 남아 있다. 사진은 다르한의 한 은행 건물인데, 그 측면 벽에 각각 소련어와 몽골어로 "우정"이라고 적힌 선전 벽화가 장식되어 있다.
다르한은 이외에도 시멘트와 모피로도 유명한데, 몽골의 대표적인 공업도시라고 할만 하다. 따라서 소득 수준도 다른 몽골 도시보다 높은 편이라고.

이전 포스트에서 얘기했듯, 다르한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들른 곳이 노밍 백화점. 그러나 입구부터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빽빽하게 들어선 사람들을 보고 우선 기가 질렸다. 바로 이 장면.
가이드에게 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상황을 잠시 파악한 가이드: 형, 이게 말이야... 오늘이 이 백화점에서 경품 추첨하는 날이라네. 지금 경품 당첨자 발표를 하고 있는데, 그것 땜에 사람들이 몰려온 거래요.

으그그그... 경품 추첨 결과를 볼려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니. 그나저나, 이 인파를 뚫고 매장 안으로 어떻게 들어간다냐. 맷집 좋은 우리 가이드, 사람들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기는 했는데, 읔, 가스를 안판단다. 하긴, 휴대용 가스 레인지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터이니, 없을 수도 있겠다. 아, 낙담. 할 수 없지, 그냥 조금 남아 있는 가스로 요령껏 해보자, 이렇게 얘기하면서 돌아서는데, 저쪽에서 어떤 덩치 큰 친구가 우리 가이드를 보면서 반갑게 손을 흔든다. 가이드 역시 무척 반가워하는 기색. 서로 아는 사이인가 보다. 몽골어로 쏼라 쏼라....

가이드 왈: 울란바타르에서 알고 지내던 친구인데, 몇 년간 소식이 끊겼다가 우연히 여기서 만났다. 이 친구, 원래 울란바타르에서 교통경찰이었다. 예전에 한국에서 다시 몽골로 돌아와서 운전 면허 없이 차를 몰고 다니다가 이 친구한테 걸렸는데, 이 시키가 10,000원 주면 봐주겠다고 해서 삥을 뜯긴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무면허 운전으로 걸렸을 때 교통경찰에게 건네주는 협정(?) 가격이 5,000원이라고 그러더라. 나중에 조금 친해졌을 때, 이 나쁜 놈아, 5,000원만 받아도 되는데 나한테 10,000원을 뜯어가? 그러면서 싸우다가 친해졌다.

오랫만에 만나서 그런지 둘이 무척 반가워하는 눈치. 이대로 헤어질 수가 있나, 그래서 다 같이 호텔로 이동.

가이드의 친구가 추천하는 호텔에 방을 잡았다. 얼핏 보기에 무슨 4층짜리 아파트 건물처럼 생겼는데, 다르한에서는 제일 큰 호텔이란다. 이름도 거창하게 King's Hotel. 방값은 우리 돈으로 9천원부터 3만 5천원 사이. 제일 좋은 스위트 룸이 3만 5천원. 뜨거운 물이 나오는지 확인했더니 아주아주 잘~ 나온다. 몽골 어디를 가든 이 놈의 물 땜에 고생한 적이 많아서 일단 뜨거운 물이 제대로 나오는지 확인부터 하는 습관이 생겼다. 굿. 스위트 룸에 베이스 캠프를 차렸다.

몽골 보드카 하라를 따서 마시면서 밥과 찌게 준비. 가스가 별로 남지 않아서 내심 조마조마 했는데, 특히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밥이 문제. 이 때, 가이드가 나서더니 가스를 조금만 사용하면서 밥을 할 수 있는 자신만의 비법을 공개하겠단다. 짜샤, 비법은 무슨... 그러다가 망치면 다 굶는다. 그러나 가이드, 단호하다. 믿어보란다.

밥을 하기 위해 코펠을 가스 레인지 위에 올려 놓은지 5-6분 정도 지났을까. 가이드가 갑자기 코펠을 내리더니 그걸 들고 침실로 들어간다.

나: 이 이 임마! 지금 뭐하는 거냐? 밥이 되기는 커녕 쌀이 불지도 않았겠다.

가이드: 어허, 잠깐 기둘리세요. 나만의 비법이 있다니까 그러시네.

그러더니, 코펠을 침대 위에 올려놓고 주변에 벗어둔 옷들로 둘둘 싼다. 그리고 끝. 이젠 기다리면 된단다.

나, 무지하게 어이없음. 가이드, 아주 태연하고 자신만만함.

하긴, 여긴 몽골이니까. 뭐든 안되는 게 어디 있겠어. 이렇게 스스로를 추스리면서 김치찌게 준비. 김치 왕창 넣고, 햄도 넣고, 참치, 된장, 고추장, 멸치, 고춧가루, 다시다도 넣고... 잡탕 김치찌게.

김치찌게 완성. 그리고 20여분 정도가 지났을 때 가이드가 침실에서 코펠을 들고 나온다. 짜식, 나름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코펠 뚜겅을 열고 밥이 되었는지를 확인하는데... 오! 신기하게도, 밥이 되었다! 뜸이 완전히 들지 않아서 약간은 푸석푸석,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훌륭하다. 충분히 먹을만 하다.

가이드, 기고만장. 내가 뭐라고 그랬냐, 밥이 된다고 그러지 않았냐,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지 않았냐, 이래도 나를 못믿겠냐.

그래, 너 잘났다, 임마. 인정하마. 나름 분석을 한번 해 보았다. 이게 어떻게 밥이 될 수 있었을까? 아마도 5분 동안 가스 레인지 위에 올려 놓았을 때 코펠 안의 뜨거운 열기를 코펠에 옷을 덮어서 그대로 보존, 그 열기로 밥이 된 듯 하다. 하여간에, 다시 한번 신기한 나라, 몽골.

약간은 어설픈 밥에 "맛 있는" 김치찌게로 저녁식사 간단히 해결. 가이드와 친구 놈, 둘이서 하라를 주거나 받거니 하면서 몽골어로 신나게 떠들어댄다. 오래간만에 만났다 이거지. 그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있던 열 아홉 살 운전기사, 뜬굼없이 다르한에 대형 야외불상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면서 자기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준다. 오, 나름 훌륭.

마침 전날 너무 폭주를 했기에 하라 냄새도 맡기 싫었던 차라, 그리고 배도 불러 빵빵하겠다, 일행들을 다구친다. 가 보자! 야외 불상 있는 데를 가 보자!

우리가 보기에는 그렇게 높지 않은 언덕인데, 그 위에 거대한 불상이 모셔져 있다. 그럼에도 가이드 왈, 몽골에서 "가장 높은 곳"에 모셔져 있는 야외 불상이란다.
날이 너무 어두어져서 다음 날 아침 다시 오기로 하고 호텔로 돌아가려는데, 가이드 친구가 바람을 잡는다. 다르한에서 제일 큰 나이트클럽을 가 볼 생각 없느냐.

가이드, 입이 쫘악 벌어진다: 형, 형, 여기 다르한에 일자리가 많고 월급도 좋아서, 몽골 여기 저기서 일하러 많이 와요. 여자들도 무지하게 이뻐요. 몽골에서는 소문났다니까, 다르한 여자들 예쁘다고.

나: 그래, 다 좋은데, 피곤하다, 임마.

나의 힘없는 항거에도 불구하고, 일행은 어느 새 나이트클럽 안에 들어가 있다. 모두 해서 한 60여평 정도 공간. 조명이 현란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10평 정도 규모의 스테이지에서 몇 명이 춤을 추고 있다. 음악은 최신곡이 아니라 80,90년대 유행했던 스타일. 분위기, 대략 이렇다.
뭐, 그저 그렇구만. 별다른 감흥 없이 그냥 콜라 한 잔 시켜놓고 있는데, 가이드는 난리가 났다. 저쪽 테이블에 있는 여자 두 명을 자기가 꼬시겠단다. 흐이구, 화상. 그러나 막무가내다. 웨이터를 불러서 그쪽 테이블에 와인 두 잔을 갖다주란다. 돈은 누가 내고? 나보고 내달란다... 켁. 싸니까 내가 참는다.

오, 이런. 그러나 가이드의 바램과는 달리, 그쪽 테이블에서는 찬바람이 쌩쌩. 가이드 쪽을 흘낏 보더니, 와인을 단 칼에 리젝트. 푸하하하, 그 순간에 왜 그렇게 웃음이 나오던지.

나: 호텔로 돌아가자. 피곤하다.

가이드: (아주아주 순순히) 네.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싶었다. 아까 뜨거운 물 콸콸 나오는 건 확인을 했겠다, 룰루랄라, 욕실로 들어섰는데... 오 오 오 마이 갓, 우찌 이런 일이. 뜨거운 물은 나오는데, 찬물이 안나온다! 내가 화상 입을 일 있나, 이 뜨거운 물로 어떻게 샤워를 한단 말인가. 아무리 사건 사고 없으면 몽골이 아니라지만, 이건 좀 심하다.

몸은 찌푸두둥... 샤워는 해야 되겠고, 화상 입기는 싫고. 그 순간 떠오르는 아이디어. 역시, 몽골에서 느는 건 임기응변. 수건을 뜨거운 물에 푹 적셨다. 그리고는 약간 식기를 기다렸다가, 그걸로 온 몸을 딲는, 수건 목욕 시작. 나름 괜찮다. 만족.

아침에 일찍 눈을 떴다. 다르한을 후다닥 둘러보고, 최종 목적지인 국경지역까지 가려면 서두를 필요가 있었기 때문. 창 밖을 보니, 하늘은 잔뜩 흐렸고, 눈발까지 날린다. 좋은 사진 건지기는 글.렀.다. 호텔 창 밖에서 내려다 본 다르한 풍경. 좀... 휑 하죠? 사진 좌측에 보이는 그나마 높은 건물은 16층 건물인데, 다르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면서 한 때는 몽골 전체에서 가장 높은 건물에 속했다고.
몽골의 전통 악기 중 모른호르가 있다. 우리 가이드는 이걸 "말 바이올린"이라고 부르던데, 두 줄의 현으로 된 전통악기로 한자어로는 마두금(馬頭琴)이라고 한다. 악기 모양과 이걸 연주하는 모습은 이렇다. 울란바타르 칭기스 식당의 간이 공연 장면.
몽골의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모른호르를 만든 사람은 후후 남지르,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이 악기가 태어난 사연은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슬프다고. 그래, 슬퍼할 준비되어 있다, 그 사연 한번 들어 보자.

옛날 옛적, 후후 남지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노래를 무척이나 잘 불렀으나, 찢어지게 가난하여 어떤 부잣집에 몸을 의탁하고 살았단다. 후후 남지르는 어떤 아리따운 처자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이 두 사람의 사랑을 아니꼽게 여긴 부잣집 주인이 그만 후후 남지르를 아주 먼 곳으로 쫒아 버렸다고. 일설에 의하면 부잣집 주인도 이 아리따운 아가씨를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질투에 눈이 멀었던 것이지요. 각설하고, 후후 남지르에게는 하늘을 날 수 있는 말이 있었는데, 후후 남지르는 이 말을 타고 날아와서 저녁마다 아리따운 아가씨와 사랑을 나누고 아침이면 돌아갔는데... 부잣집 주인이 이걸 눈치채고 만다. 질투에 눈이 멀면 뭔 짓을 못할까, 부잣집 주인은 후후 남지르의 말을 죽여 버린다. 불쌍한 후후 남지르. 그는 이제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애마(愛馬)마저 잃고 만다. 이 슬픔을 어이 할까나, 후후 남지르는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며, 동시에 죽은 애마를 안타까워 하면서 죽은 애마를 이용하여 악기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모른호르다. 후후 남지르는 말의 머리 모양으로 모른호르의 악기 윗부분을 만들고, 애마의 목털과 꼬리털을 엮어 두 줄의 현을 만들었다. 이 악기의 한자어 표기인 마두금(馬頭琴)은 바로 여기서 연유한다.

모른호르는 따가닥, 따가닥 하는 말 달리는 소리도 낼 수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이 악기의 연주 소리를 들어보면 말이 질주하는 가운데 원인모를 비장감이나 애뜻한 슬픔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 옛날 후후 남지르의 애통한 마음이 그대로 악기에 전해진 듯.

다르한에 바로 이 남자, 후후 남지르의 동상과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후후 남지르가 모른호르를 연주하면서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이다.
그런데, 그런데... 조각상 뒷편의 이 한글 낙서는?
후후 남지르 기념공원 맞은편에 어젯밤에 들렀던 야외 불상이 있다.
그곳으로 이동. 우선, 이 야외불상의 입구는 돌사자 두 마리가 지키고 있다. 몽골인들은 옛부터 가장 강한 짐승으로 사자를 숭배해 왔는데, 이 강한 사자에게 신성한 이곳을 지켜달라는 염원이 담겨 있는 듯. 신에게 바치는 것 중 으뜸으로 치는 푸른 천, 즉 하닥이 이곳에서도 사자의 입과 목에 걸려 있다. 오른쪽 정자 모양으로 생긴 구조물 안에 있는 것은 나무로 만든 마니차[法輪]로, 티벳불교에서는 이 마니차를 한 바퀴 돌릴 때마다 불경을 한번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한다. 티벳 불교 사원에 가면 이 마니차와 마니차를 돌리는 신도들의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계단을 통해 언덕 위로 올라가면 부처님과 마니차, 그리고 티벳 불교 양식의 여러 구조물을 볼 수 있다.
옆에 세워진 작은 코끼리 상.
다르한 시내 쪽으로 방향을 옮긴다. 카메라가 태양과 맞짱을 뜰 수 있을 정도로 잔뜩 흐렸다.
시내 모습이다. 4-5층 높이의 아파트와 상가 건물들이 대부분으로, 우리가 보기에는 상당히 단촐하다.
다르한에서 그나마 가장 뽀대가 있는 건물. 문화회관이라고 했다.
다르한을 빠져 나가는 길. 도로 양쪽에 가로수가 세워져 있는 것은 러시아 스타일이라고.
다르한을 빠져 나왔다. 다음 목적지 수흐바타르까지는 대략 100Km 정도.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지만, 눈발이 흩뿌리는 날씨와 도로 사정을 감안하면 녹녹찮은 여정이 될 듯 하다.

by 8½이다 | 2007/03/12 14:55 | 여행을 갔는데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트랙백 주소 : http://latino.egloos.com/tb/3191109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Linked at 태어나기는 했지만 : 몽골 -.. at 2007/10/05 17:37

... 으로 개선된 듯. 아래 사진은, 고비의 한 식당 벽면에 그려져 있던 몽골의 전통 악기 모른호르의 전설에 대한 그림. ISO 800. 모른호르의 전설이 궁금하신 분은 여기를 클릭.아래 사진은 위 사진의 100% 크롭.8. 인터페이스가 상당히 편하게 되어 있다. 특히 자기가 원하는 촬영조건을 저장할 수 있는 MR과 C 버튼의 활용도가 높았다. ... more

Commented by Fidelity at 2007/03/14 17:42
에너지 효율 최고의 밥짓기네요. 그러게 인간 진화는 다 환경탓이라니까요. ^^
호텔의 낫찬물 온리 뜨거운물 음모도 혹시 에너지절약 차원이 아닐지.
아아. 뭔가 영수님과 안어울리는 궁색의 수건목욕. 웃으면 안될거 같은데 자꾸 웃음이 나와요. 이히히히.
Commented by 8½이다 at 2007/03/15 18:01
정말 애네들은 안되는 게 없어요. / 찬물이 안나올 때의 그 황당함.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네요...^^ 그래도 아이디어 좋지 않습니까? 수건 샤워, 하하하하.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