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2월 20일
프랑스 파리 - 퐁네프 (Pont Neuf)
다리의 기능성과 상징성은 모두 한 단어로 요약된다. 바로, 연결.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Les Amants du Pont-Neuf / The Lovers on the Bridge, 1991)>에서 알렉스와 미쉘,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연결되는 곳도 다리. 그리고 그 다리는 영화제목에 드러나 있듯 바로 퐁네프 다리다. 사진은 예술의 다리에서 바라 본 퐁네프 다리의 전경. 클릭하면 큰 사이즈.
퐁네프 다리는 센 강의 시테 섬 서쪽 끝자락에서 우로는 루브르, 그리고 좌로는 셍 제르망 드프레를 연결하고 있다. 윗 사진 중앙에서 삼각형 모양으로 삐쭉 튀어나와 보이는 부분이 바로 시테 섬 서쪽 끝자락이다. 그 반대쪽, 즉 시테 섬 동쪽 끝자락에는 그 유명한 노트르담 사원이 있다. 아래 지도에서는 시테 섬 왼쪽 끝부분에 퐁네프가 있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은 <소년, 소녀를 만나다 (Boy Meets Girl, 1984)>와 <나쁜 피 (Mauvais Sang / Bad Blood, 1987)>를 연타석으로 히트시키면서 프랑스 영화계의 기대주로 떠오른 레오스 꺄락스 (Leos Carax, 불어에서 마지막 자음은 묵음이지만, 본인 스스로 레오 대신 레오스라고 불러달라니까...) 감독의 세 번째 작품. 거리의 부랑자 알렉스와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화가 미쉘이 퐁네프 다리에서 만나면서 둘 사이에 싹 트기 시작한 사랑의 감정을 다룬 이 영화는 스케일이 크지도 않을 뿐더러, 줄거리 또한 어떻게 보면 단순하다. 그러나 <퐁네프의 연인들>은 제작 발표가 나면서부터 온 프랑스를 떠들썩 하게 만들며, 이후 프랑스 영화사의 여러 신기록들을 갈아치운다. 비단, 프랑스 영화계의 기대주 꺄락스 감독의 작품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문제의 발단은 바로 로케이션.
영화 제목 자체가 <퐁네프의 연인들>인만큼 감독은 퐁네프 다리에서 촬영을 원했다. 그러나, 퐁네프는 파리에서 가장 번화한 다리 중 하나였기에, 영화촬영을 위해 다리를 일정 기간 폐쇄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영화는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그러나 꺄락스 감독은 죽어도 영화를 퐁네프에서 찍기를 원했고, 시당국에서 이를 허락하지 않자 파리의 수많은 예술인들이 영화촬영 협조 연대서명을 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뜻이 받아들여져 시당국은 퐁네프 다리에서의 찰영허가를 한시적으로 내주는데, 이를 기뻐하기도 잠깐. 퐁네프 다리에서의 촬영이 시작된 첫 날, 남자 주인공 알렉스 역의 드니 라방이 엄지손가락을 다쳐 촬영이 무기한 중단되고 만다. 어렵게 허가를 받아낸 퐁네프 다리에서의 촬영 시한이 덧없이 흘러가 버리자 제작자는 초조해질 수밖에 없고, 드니 라방이외의 배우를 감독에게 알아보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감독은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 알렉스 역에 드니 라방이외의 대안은 없다는 것.
드니 라방이 부상에서 완쾌되어 다시 촬영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퐁네프 사용 기한이 끝나가고 있었고, 꺄락스 감독은 영화의 불과 몇 분 정도의 분량밖에 완성하지 못한다. 처음부터 퐁네프에서 영화를 마무리하기란 힘들 것임을 예상했던 제작자가 아이디어를 낸다. 퐁네프 다리에서의 촬영 허가를 다시 얻기는 힘들터이니, 차라리 셋트를 짓자. 오, 굿 아이디어! 꺄락스 감독도 흔쾌히 이 아이디어에 찬성하고, 퐁네프 다리를 셋트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 시작되는데... 이 셋트 아이디어는 여러 사람 죽이는 아이디어로 돌변하고만다. 꺄락스 감독의 이전 두 작품 <소년, 소녀를 만나다>는 전형적인 저예산 영화였고 <나쁜 피> 역시 제작비가 그렇게 많이 든 대작영화는 아니었다. <퐁네프의 연인들> 역시 처음에는 이처럼 가벼운 코미디 영화로 만들려고 했으나, 퐁네프 다리 셋트를 짓기로 결정한 순간 제작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 시작, 이 아이디어를 냈던 제작자는 결국 파산하고 만다. 감독은 재질에서부터 디테일한 면까지 퐁네프 다리를 100% 똑같이 만들기를 원했고, 나아가서 다리 주변의 시가지 모습까지도 그대로 재현하려고 했는데, 밑 빠진 둑에 물 붓기 식으로 돈이 아무리 들어가도 셋트는 완성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 퐁네프 셋트는 말 그대로 돈 먹는 하마였던 셈. 이후 영화에 관심을 보인 제작자들이 덤벼들었다가 제작비를 이기지 못하고 연겨푸 파산, 영화 제작은 재개될 듯 하다가 다시 허공에 뜨고 만다. 이처럼 영화 제작이 계속 암초에 부딪치면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꺄락스 감독에게 가장 위안이 되었던 사람은 여주인공 역의 줄리엣 비노쉬. 비노쉬의 제안으로 두 사람은 머리를 식히기 위해 같이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고.
<퐁네프의 연인들> 제작 중단은 온 프랑스를 들끓게 만들었다. 특히 언론에서 들고 일어났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영화를 완성시켜야 한다는 대대적인 기사가 연일 게재되었으며, 나중에는 프랑스 문화성 장관까지 나서서 제작자를 물색하는 프랑스 영화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다. 이 때 나타난 흑기사. 프랑스 최고의 제작자로 꼽히는 크리스티앙 페쉬네가 투입되면서 우선 셋트가 완성되고 영화 제작이 재개된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셋트는 10헥타르 넓이. 프랑스 영화사상 최대, 최고였다. <퐁네프의 연인들> 국내판 DVD에 실린 스페셜 피처 중 이런 대목이 있다. 이 셋트를 완성하기까지 200만개의 볼트와 못, 축구장 12개분의 나무판자, 320톤의 버팀목, 작업인원들의 체중 합계는 300톤, 1,300박스의 와인을 마셨고, 그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13명, 망가진 차가 19대. 화질이 무지하게 좋지 않지만, 국내판 DVD 스페셜 피처에 실린 완성된 퐁네프 셋트의 모습.
퐁네프 셋트와 영화 제작을 마무리한 마지막 제작자 페쉬네의 말이 인상적이다: "꺄락스는 요구가 많은 감독도 아니다. 비슷한 감독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를 지지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고들 하지만, 나를 포함해 누구도 강요하지는 않았다. 영화는 자유로운 창작의 마지막 보루다. 저예산 영화를 만드는 감독에게 대작을 만들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
이렇게 프랑스 영화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쏟아부으면서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은 완성된다. 그렇다면, 꺄락스 감독이 그토록 집착했던 퐁네프의 다리는 과연 어떤 다리일까.
16세기 중엽 파리의 센 강 위에는 다리가 두 개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두 개의 다리가 모두 낡은데다가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항상 북적거려서 앙리 3세는 센 강 우안의 루브르 궁과 시테 섬 그리고 센 강 좌안의 셍 제르망 드프레를 연결하는 새로운 다리를 짓기로 한다. 위치는 시테 섬 서쪽 끝자락, 공사가 시작된 것은 1578년. 우리나라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대략 14년전이다. 웬 역사 공부?
1578년에 시작된 이 다리의 공사가 끝난 것은 그러나 앙리 4세 때인 1607년. 앙리 4세는 이 새로운 다리의 이름을 말 그대로 새로운 다리, 즉 퐁네프라고 명명했다. 불어에서 Pont(퐁)은 다리, 그리고 Neuf(네프)는 새롭다는 뜻. 새로운 다리라는 뜻의 이 퐁네프는 그 이름과 달리 현재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퐁네프는 개통과 함께 새로운 기록을 몇 가지 세운다. 우선, 예전의 다리들은 그 위에 집이 있었으나, 퐁네프는 그 위에 집이 들어서지 않은 최초의 다리였다. 퐁네프는 또한 파리 최초로 바닥이 포장된 다리이기도 했다. 퐁네프는 이 때문에 파리 시민들에게 만남의 장소로 각광을 받았으며, 특히 다리 중간 중간의 반원형 석조 의자는 시민들에게 일종의 휴식공간을 제공, 큰 인기를 끈다.
개보수 작업을 위해 1989년부터 1991년까지 폐쇄되었던 퐁네프 다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이 반원형 석조의자는 주인공들에게 안식처 역할을 한다. 잠에서 깬 미쉘에게는 침대가 되고, 시장에서 생선을 슬쩍 훔쳐온 알렉스에게는 주방이 되기도 한다.
또 다른 주인공 한스의 거처도 이곳이고,
미쉘이 알렉스에게 벗어나기 위해 술에 약을 타서 마시도록 하는 곳도 이 곳이고,
알렉스가 미쉘이 떠나 버린 후 아무도 잊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서 권총으로 손에 자해를 한 후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방화혐의로 경찰에 체포되는 곳도 이곳이고,
알렉스가 출옥 후 미쉘과 다시 만나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이처럼, 영화에서 주인공들에게 안식처 또는 일종의 집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이 반원형 석조 의자이며, 이곳은 지금도 파리 시민들에게 휴식 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할머니 표정이 너무 뚱~ 바로 위 영화 장면과 너무 대조적...^^
현재의 다리는 19세기에 개축된 것인데, 퐁네프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다리 양쪽에 보도를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전 포스트에서 잠깐 언급했듯 파리의 다리들은 대부분 강둑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알렉스가 처음 미쉘을 만난 후 나름 잘 보이기 위해 몸을 씻으러 내려가는 곳.
그리고 한스가 발을 잘못 디뎌 강에 빠지게 되는 이 곳.
퐁네프 다리의 아랫쪽은 바로 이렇게 생겼다.
영화에서 알렉스와 미쉘이 처음 만났을 때 미쉘이 알렉스를 그려주기 다리 아래로 내려가는 통로가 있다.
바로 이곳인데...
아래로 연결된 계단을 빠져 나오면 이곳으로 나오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서, 미쉘이 알렉스를 그려주고 있는 이 곳.
바로 베르갈랑 공원이다. 작지만 아담하게 꾸며져 있다.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한가로이 앉아 예술의 다리를 바라보는 재미가 만만찮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내려가서 본 모습.
다른 각도에서 본 모습. 열심히 사진 찍고 있는 저 모습, 남의 일 같지 않아요... 클릭하면 큰 사이즈.
지금은 이 공원 한쪽 옆에 센 강 유람선을 운영하는 브데뜨 뒤 퐁네프(Vedettes du Pont Neuf)가 있다.
무슨 고기가 있다고... 유람선 선착장 배 옆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아저씨. 아, 이 사진의 강물 색깔 제대로 나왔습니다. 센 강이 거의 이 색깔입니다.
한 술 더 떠서, 고기 많이 잡았느냐고 친구가 찾아와서 묻는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초반 하이라이트는 미쉘이 거사(?)를 치룬 후 알렉스와 함께 술에 취해 퐁네프 다리 위에 쓰러져 있다가 맞게 되는 프랑스 혁명기념일 축제. 안그래도 이미 스포일러 만땅인데, 어떤 거사였느냐고 물어보지 맙시다.
미쉘이 알렉스와 함께 어떤 동상에 올라 권총을 미친 듯이 쏘아대는 장면이 있다.
이 동상의 주인공은 앙리 4세. 퐁네프 다리를 완공 후 퐁네프라는 이름까지 명명했던 앙리 4세가 죽은 후 그를 기리기 위해 다리 중앙의 광장에 동상을 세웠다. 그러나 이 동상은 프랑스 혁명 때 형체도 없이 철저하게 파괴되었는데, 지금의 동상은 1818년에 복원된 것. 클릭하면 큰 사이즈.
앙리 4세 동상과 퐁네프. 그리고 그 밑을 지나는 센 강의 유람선.
권총을 버리라는 미쉘의 말을 듣지 않고 대신 구두 한짝을 강물에 던져 미쉘을 속인 후 알렉스가 권총을 보관하는 곳. 그리고 잠을 자기 위해 퐁네프의 가로등 전원을 끄기도 하는 이 곳.
이처럼 퐁네프에는 여러 문양들이 조각되어 있는데, 대부분은 처음 다리를 착공한 앙리 3세의 여러 표정들. 특히 다리 난간 바깥쪽으로 많다.
가로등 아랫쪽에도 조각이 되어 있다.
영화를 보다 보면 퐁네프 다리 한쪽 끝의 이 건물이 자주 나오는데...
바로 LVMH가 소유하고 있는 파리의 유명 백화점 사마리텡이다. 지금은 2005년도에 안전상의 이유로 문을 닫았다고 한다.
영화 후반부에, 출옥 후 알렉스가 미쉘을 만나러 퐁네프 다리로 가기 위해 내린 전철역. 바로 퐁네프 역이다.
퐁네프 다리의 루브르 쪽, 사마리텡 백화점 건너기 전에 이 지하철 역이 있다.
그리고 여기서 길 하나만 건너면 퐁네프 카페도 있다. 들어가 보지는 않았으니, 어떻냐고 묻지 마시길.
영화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아, 이 얘기만 더 하고. 예전에 볼 때도 그랬고 이번에 스크린 캡춰 하기 위해 다시 영화를 보면서도 느꼈던 궁금증 하나. 아니, 도대체 공사는 언제 하는지. 분명히 개보수중이라는 안내팻말까지 보여주면서 영화가 시작하건만, 영화 내내 공사하는 장면은 하나도 안나온다. 그런데 영화 후반부에는 공사가 다 끝나서 다리가 말끔한 모습으로 개통되어 있지 않은가. 이 무슨 식초에 밥 말아 먹을 조화인지... 각설하고, 이젠 퐁네프 그 주변 이야기. 우선, 퐁네프 다리에서는 그 모습을 담기 위해 화폭을 펼친 채 그림에 열중하고 있는 화가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퐁네프가 개통된 후 1619년경부터 센 강을 따라 고서적 노점상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까지 그 명맥이 이어져 파리의 명물로 자리 잡은 부끼니스트(bouquiniste)이다. 손님이야 오든 말든, 십자말 풀이에 열중이신 할아버지 모습이 인상적...^^
끝으로, 2007년 2월, 퐁네프의 셍 제르망 드프레쪽 끝단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공사중이었다.
영화에서 보여주던 모습과 흡사하죠?
아, 무지하게 긴 포스트가 끝났습니다. 좋지도 않은 머리로 오래 전에 봤던 영화 내용 기억해내면서 사진 찍느라 힘들었는데, 이런 식으로 아는 거 모르는 거 다 들춰내면서 센 강의 다리들을 소개하다가 언제나 마무리될지.


영화 제목 자체가 <퐁네프의 연인들>인만큼 감독은 퐁네프 다리에서 촬영을 원했다. 그러나, 퐁네프는 파리에서 가장 번화한 다리 중 하나였기에, 영화촬영을 위해 다리를 일정 기간 폐쇄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영화는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그러나 꺄락스 감독은 죽어도 영화를 퐁네프에서 찍기를 원했고, 시당국에서 이를 허락하지 않자 파리의 수많은 예술인들이 영화촬영 협조 연대서명을 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뜻이 받아들여져 시당국은 퐁네프 다리에서의 찰영허가를 한시적으로 내주는데, 이를 기뻐하기도 잠깐. 퐁네프 다리에서의 촬영이 시작된 첫 날, 남자 주인공 알렉스 역의 드니 라방이 엄지손가락을 다쳐 촬영이 무기한 중단되고 만다. 어렵게 허가를 받아낸 퐁네프 다리에서의 촬영 시한이 덧없이 흘러가 버리자 제작자는 초조해질 수밖에 없고, 드니 라방이외의 배우를 감독에게 알아보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감독은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 알렉스 역에 드니 라방이외의 대안은 없다는 것.
드니 라방이 부상에서 완쾌되어 다시 촬영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퐁네프 사용 기한이 끝나가고 있었고, 꺄락스 감독은 영화의 불과 몇 분 정도의 분량밖에 완성하지 못한다. 처음부터 퐁네프에서 영화를 마무리하기란 힘들 것임을 예상했던 제작자가 아이디어를 낸다. 퐁네프 다리에서의 촬영 허가를 다시 얻기는 힘들터이니, 차라리 셋트를 짓자. 오, 굿 아이디어! 꺄락스 감독도 흔쾌히 이 아이디어에 찬성하고, 퐁네프 다리를 셋트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 시작되는데... 이 셋트 아이디어는 여러 사람 죽이는 아이디어로 돌변하고만다. 꺄락스 감독의 이전 두 작품 <소년, 소녀를 만나다>는 전형적인 저예산 영화였고 <나쁜 피> 역시 제작비가 그렇게 많이 든 대작영화는 아니었다. <퐁네프의 연인들> 역시 처음에는 이처럼 가벼운 코미디 영화로 만들려고 했으나, 퐁네프 다리 셋트를 짓기로 결정한 순간 제작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 시작, 이 아이디어를 냈던 제작자는 결국 파산하고 만다. 감독은 재질에서부터 디테일한 면까지 퐁네프 다리를 100% 똑같이 만들기를 원했고, 나아가서 다리 주변의 시가지 모습까지도 그대로 재현하려고 했는데, 밑 빠진 둑에 물 붓기 식으로 돈이 아무리 들어가도 셋트는 완성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 퐁네프 셋트는 말 그대로 돈 먹는 하마였던 셈. 이후 영화에 관심을 보인 제작자들이 덤벼들었다가 제작비를 이기지 못하고 연겨푸 파산, 영화 제작은 재개될 듯 하다가 다시 허공에 뜨고 만다. 이처럼 영화 제작이 계속 암초에 부딪치면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꺄락스 감독에게 가장 위안이 되었던 사람은 여주인공 역의 줄리엣 비노쉬. 비노쉬의 제안으로 두 사람은 머리를 식히기 위해 같이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고.
<퐁네프의 연인들> 제작 중단은 온 프랑스를 들끓게 만들었다. 특히 언론에서 들고 일어났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영화를 완성시켜야 한다는 대대적인 기사가 연일 게재되었으며, 나중에는 프랑스 문화성 장관까지 나서서 제작자를 물색하는 프랑스 영화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다. 이 때 나타난 흑기사. 프랑스 최고의 제작자로 꼽히는 크리스티앙 페쉬네가 투입되면서 우선 셋트가 완성되고 영화 제작이 재개된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셋트는 10헥타르 넓이. 프랑스 영화사상 최대, 최고였다. <퐁네프의 연인들> 국내판 DVD에 실린 스페셜 피처 중 이런 대목이 있다. 이 셋트를 완성하기까지 200만개의 볼트와 못, 축구장 12개분의 나무판자, 320톤의 버팀목, 작업인원들의 체중 합계는 300톤, 1,300박스의 와인을 마셨고, 그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13명, 망가진 차가 19대. 화질이 무지하게 좋지 않지만, 국내판 DVD 스페셜 피처에 실린 완성된 퐁네프 셋트의 모습.

이렇게 프랑스 영화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쏟아부으면서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은 완성된다. 그렇다면, 꺄락스 감독이 그토록 집착했던 퐁네프의 다리는 과연 어떤 다리일까.

(핸드릭 모머스 - "퐁네프에서 바라본 루브르")
16세기 중엽 파리의 센 강 위에는 다리가 두 개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두 개의 다리가 모두 낡은데다가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항상 북적거려서 앙리 3세는 센 강 우안의 루브르 궁과 시테 섬 그리고 센 강 좌안의 셍 제르망 드프레를 연결하는 새로운 다리를 짓기로 한다. 위치는 시테 섬 서쪽 끝자락, 공사가 시작된 것은 1578년. 우리나라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대략 14년전이다. 웬 역사 공부?
1578년에 시작된 이 다리의 공사가 끝난 것은 그러나 앙리 4세 때인 1607년. 앙리 4세는 이 새로운 다리의 이름을 말 그대로 새로운 다리, 즉 퐁네프라고 명명했다. 불어에서 Pont(퐁)은 다리, 그리고 Neuf(네프)는 새롭다는 뜻. 새로운 다리라는 뜻의 이 퐁네프는 그 이름과 달리 현재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 by | 2007/02/20 23:19 | 여행을 갔는데 | 트랙백(1)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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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들이 정말 시원하고 좋으네요. 어떻게 같은 장소인데 전혀 다른 곳을 다녀온 사진 같은지.... 이히히. 그리고 어찌나 해박한 지식을 갖고 계신지. 여행후기 만큼은 정말 영수님이랑 비교되서 엄두를 못내겠어용.
marlowe / 중간에 파산하거나 제작에서 손을 뗀 제작자들 인터뷰를 보니까, 정말 참담하더군요. 처음에 셋트장 건설비용 계산을 잘못했었나 봅니다. 하지만 후회해도 항상 때는 늦는 법이니...
퐁네프의 연인들, 소년 소녀를 만나다, 나쁜 피.. 라구요.
마치 프랑스를 갔다온 느낌이 드는 군요.
소설 향수를 읽다보면 다리위에 위치한 상점들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아무리 애써도 그림이 안그려지거든요.
다리 위의 집들 , 다리와 함꼐 사라져 버리는 짐들.......참 흥미로워요.
(퐁네프가 그 위에 집에 들어서지 않는 최초의 다리라는 말에...)
아사라뵤 /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퐁네프의 연인들>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평이 엇갈리는 부분이 많아서 직접 보시는 게 제일 나을 듯 합니다. 세 작품 모두 국내에서 DVD로 출시가 되어 있습니다.
랭보 / 언젠가 <노틀담의 꼽추>이던가 어떤 영화에서 다리 위의 집 풍경을 본 적 있는 듯 한데 - 아, 이 감퇴되는 기억력 - 혹시라도 스크린 캡춰나 사진 자료를 찾게 되면 위 포스트 퐁네프 다리 설명쪽에 올려 놓도록 하겠습니다.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