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1월 18일
에바 뻬론 (Evan Peron) - 아르헨티나의 신데렐라 (1부)
에비따 (Evita, 영어식 발음으로 에비타)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져 있는 에바 뻬론 (Eva Peron, 영어식 발음으로 에바 페론). 요부(妖婦)와 성녀(聖女)라는 상반된 평가가 암시하듯, 에바 뻬론만큼 아르헨티나에서 열광적인 사랑을 한 몸에 받고, 동시에 적대적인 큰 미움의 대상이 되었던 인물은 없었으리라. 살아 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수많은 얘기들이 회자되고 있을 정도로 에바 뻬론은 아르헨티나의 상징 그 자체이며, 당연한 얘기일지 모르겠으나, 마돈나가 에비따 역을 맡아 화제가 되었던 앨런 파커 감독의 <에비타 (Evita)>(1996)를 비롯하여 수많은 영화의 소재로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아르헨티나 영화사에서 뻬론과 에바가 그 중심에 자리잡았던 이른바 “뻬론주의”가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녹녹치 않다. 그러니, 라틴 영화 이야기를 대문에 건 이 블로그에서 아르헨티나 영화 얘기를 하려면, 한번은 다루고 넘어가야 할 주제이기도 하지요. 가난에 찌든 어린시절을 떨치고 일어나 아르헨티나의 퍼스트 레이디로 우뚝 서서, 자신의 꿈을 실현시킨 아르헨티나의 신데렐라로 불리기까지 에바 뻬론은 참으로 먼 길을 걸어 왔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아르헨티나의 근세사가 보인다. 나아가서, 에바 뻬론의 신화는 비단 아르헨티나에만 머물지 않는다. 여성들은 항상 음지에 머물러야 했고 그 지위 또한 보잘 것 없었던 보수 전통의 라틴 아메리카에서, 정치적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전면에 나선 에바 뻬론은 이전까지의 여성에 대한 모든 고정관념을 뒤바꾸어 놓았기 때문. 따라서, 우리는 에바 뻬론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의 보수 전통적인 사회관습이 허물어지는 한 단면을 엿볼 수도 있다. 자 그럼, 쥔장과 함께 이 매력적인 여걸, 에바 뻬론의 삶을 한번 살펴 봅시다.
에바 뻬론은 1919년 아르헨티나 로스 똘도스에서 후아나 이바르구렌의 다섯 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후한 두아르떼는 유부남임에도 불구, 에바의 어머니와 15년간 관계를 맺어 왔는데, 그 두 사람 사이에서 에바가 태어난 것. (왼쪽 사진: 에바의 아버지와 어머니) 본처 입장에서 볼 때는 첩의 자식 되겠습니다. 에바의 아버지, 어머니는 이런 비정상적인 관계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가 돈독했으며 에바와 다른 형제들, 블랑까, 엘리사, 후안, 에르민다 모두 법적으로 아버지 후안 두아르떼의 호적에 올랐다. 그러나 이처럼 모두 법적으로 후안 두아르떼의 자식으로 되어 있었지만, 1920년, 에바의 나이 일곱 살 때 아버지 후안 두아르떼의 장례식에 어머니가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갔지만 장례식장 입장 여부를 놓고 본가측 식구들의 반대로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후안 까를로스 데산소 감독의 영화 <에바 뻬론 (Eva Perón)>(1996)을 보면, 이 당시 상황에 대해 자세히 나온다. <에비타>라는 제목으로 국내 출시된 이 영화 DVD는 국내에서 현재 무지하게 헐값으로 (2,500원인가?) 판매되고 있는 중.
에바의 식구들은 끼니 걱정을 할만큼 가난하게 살았다. 어머니와 언니들이 모두 부잣집의 가정부로 일을 했고, 에바 역시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어린 나이부터 부잣집의 주방에서 허드렛 일을 해야만 했다. 어린 나이의 에바는 이 때 아르헨티나의 극심한 빈부격차를 처음 목격하게 되는데, 모두가 평등하게 잘 먹고 잘 사는 나라에 대한 이상은 이후 에바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로 자리잡는다. 에바는 가족들이 정착한 후닌이라는 곳에서 비로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오른쪽 사진: 후닌 시절의 어린 에바) 대부분의 동창들이 기억하는 이 당시 에바의 모습은 외모도 그렇게 특출나지 못하고, 성적 또한 썩 뛰어나지 못한, 그냥 평범한 학생에 불과했다. 공부에 별 다른 소질이 없다는 걸 깨달은 에바, 연기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생각 참 잘한 거지요. 그리고 1933년 “학생들의 봉기”라는 제목의 학교 연극에 단역을 맡아 출연한 후 에바는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본격적으로 키워 나간다. 열 여섯 살 때, 에바는 아구스띤 마갈디라는 이름의 잘 생긴 탱고 가수가 후닌을 방문, 공연을 갖는다는 소식을 접한다. 공연 당일 날, 에바는 공연 중인 아구스띤 몰래 그의 분장실에 잠입해 들어간다. 그리고 뭔가가 있었다! 참, 당돌하기도 하지. 다음 날, 에바는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쫒아 그와 함께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떠난다. 그러나 열 다섯 살짜리 소녀가 대도시에서 살아가기에는 모든 것이 힘들었고, 에바는 결국 이따금씩 몸을 팔아 생활비를 마련하기도 했다. 어렵게 지내던 에바에게 처음 기회가 온 것은 잡지 모델 일. 당시 그녀는 상당히 말라깽이였으나 미모만큼은 뛰어났고, 광고 모델로 가끔 나가기도 했다. (왼쪽 사진 上) 1935년, 에바는 한 연극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배우로서의 기회를 잡게 된다. 그러나 말 그대로 보잘 것 없는 역에 불과했고, 설상가상격으로, 하필 건강마저 나빠져서 이후 한 두 번 더 단역을 맡은 게 고작이었고, 배우로서의 꿈은 멀어져 가는 듯 했다.
그러나 에바는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에바에게 행운이 찾아 들었다. 신또니아 (Sintonia, 왼쪽 사진 下. 표지에 실린 에바) 잡지사의 소유주와 사귀게 된 것. 부자에 상당히 미남이었던 신또니아 잡지사의 소유주는 에바를 애인으로 만나는 동안 여러가지 일을 알선해 주었고, 에바는 평생 처음으로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안정적인 생활기반을 마련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당시 인기 있던 라디오 아르헨티나 방송국의 한 라디오 드라마에 출연할 기회를 얻게 된다. 라디오 드라마 출연을 계기로 에바는 점차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 인기를 이용해서 군부와 커넥션을 만들어 갔으며 실력자들과 인연을 맺어 갔다. 군부 실력자들과의 이런 관계는 에바에게 영화배우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고, 에바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뛰어난 배우는 아니었지만 에바는 영화를 좋아했고, 영화감독들을 꼬시는 게 좋은 배역을 따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임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꼬시다 = "남자를 유혹해서 잠자리를 같이 한 다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룬다"는 뜻의 포괄적인 의미 되겠습니다. 그리고 에바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지만, 그토록 열망하던 대스타의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자선단체 행사장에서 에바가 후안 뻬론이라는 한 젊은 대령을 만난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다.1944년 수 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산후안 지진피해 성금 모금회에서 에바와 후안 뻬론은 처음 만났다. 뻬론은 당시 신군사정권의 실력자 중 한 명이었으며 홀아비였는데, 에바가 그런 뻬론을 그냥 지나칠리 없었다. 뻬론 또한 에바에게 처음부터 호감을 가졌고, 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 모금회장을 나설만큼 만나자마자 스파크가 일었다. 이렇게 첫 눈에 사랑에 빠진 두 사람. 에바는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뻬론과 동거에 들어갔다. 뻬론이 홀아비였잖아, 그러니 아주 자연스러운 거지 뭐. 미남에 당당한 성격의 뻬론 (왼쪽 사진. 젊은 장교시절의 뻬론), 젊고 우아했던 에바, 이들 두 사람은 말 그대로 완벽한 커플이었다. 에바는 뻬론의 동거녀로 거의 2년을 함께 살았으며, 뻬론이 권좌에 오르는 길에 함께 했다. 뻬론은 궁극적으로 최고 권력을 꿈 꿀만큼 그 야망이 대단했지만, 에바 또한 뻬론에 못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두 사람은 정치적으로도 완벽한 팀웍을 이루었다.
뻬론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되자, 에바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슬럼가의 소외된 노동계층이 진정한 뻬론의 권력기반이 될 수 있다고 설득, 뻬론이 노동자를 위해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고 더 나은 노동환경을 만들어 나가도록 했다. 뻬론은 자신을 민중의 대변인으로 자처하면서, 노조지도자들과 강력한 연대를 형성해 나갔고, 시간이 흐를 수록 정부조차 두려워할만큼 아르헨티나 민중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뻬론은 자신과 뜻을 같이 하지 않는 노조 지도자들은 투옥까지 시키는 등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주변을 위협하면서 지지 기반을 넓혀 나갔다. 반대세력에 대해서는 거의 인내심이 없던 뻬론이었지만, 아르헨티나 민중들은 그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보냈으며, 이러한 대중적인 인기는 뻬론의 권력을 더욱 막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뻬론이 이처럼 권력의 중심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는 동안 가장 핵심적인 조력자는 바로 에바였다. 에바는 뻬론을 독려하면서, 그리고 때로는 싫은 소리까지 하면서 그를 밀어붙였다. 그러나 동거녀라는 신분 때문에 자신은 언제나 무대 뒷편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뻬론이 더욱 막강한 권력을 움켜쥐면서 껄끄러운 상대로 부각되자, 라미레스 대통령은 마침내 1945년 10월 11일 뻬론을 구속해 버린다. 이에 대한 에바의 대응은 민첩했다. 에바는 노동조합의 모든 뻬론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수도 한복판에서 뻬론 석방을 위한 대규모 시위를 벌인다. 그리고 10월 17일, 뻬론은 구속된 지 불과 6일만에 풀려났다. 뻬론이 아르헨티나의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임이 입증된 셈이었다.
...2부에서 계속
# by | 2006/01/18 17:55 | 영화를 봤는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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