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콩> vs. <플레쉬 고든>

피터 잭슨이 어린 시절 <킹콩>(1933)을 보고 무지하게 큰 감동을 먹었고, 나중에 영화감독이 되면 이를 꼭 리메이크하겠다고 전의를 불태워 왔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킹콩 신드롬의 재현까지는 아니더라도, PJ의 <킹콩>(2005)은 메리안 쿠퍼의 1933년 오리지널 <킹콩>을 다시 살려놓았다. 오리지널의 흐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피터 잭슨 특유의 상상력이 곳곳에 배어 있는 <킹콩>은 최첨단 영화기법을 총동원, 리메이크의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이 <킹콩>은 <사무라이 리벨리온>과 함께 쥔장 선정 막가파식 2005년 영화 베스트 15에서 공동 1위를 한 작품이기도 하므로, 2006년 첫 포스트를 王콩과 관련된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공동 1위로 선정해 놓고도, 별 다른 코멘트를 쓰지 않은 것에 대한 일종의 땜빵이라고나 할까^^

오리지널 <킹콩>과 PJ의 <킹콩>이 그 큰 흐름은 같이 가고 있어도, 두 작품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王콩과 앤 대로우 사이의 관계설정이 아닐까 한다. 1933년 오리지널에서 王콩의 앤 대로우에 대한 애정은 거의 일방적인 짝사랑이다. 王콩에게 붙잡힌 앤 대로우는 공포에 질려 내내 비명만 질러댄다. 王콩이 다른 괴물들로부터 자신의 목숨을 구해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PJ의 <킹콩>에서는 이 양자간의 관계가 약간 얼레리꼴레리, 야릇한 사이로 설정된다. 앤을 바라보는 王콩의 눈빛, 그리고 王콩을 바라보는 앤의 눈빛을 보면 이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王콩과 앤의 관계설정 대해서는 PJ의 이 해석이 원작보다 영화 흐름상 더 설득력을 지닌다고 본다.

<킹콩>(1933)은 첫개봉 당시에는 힘발이 조금 미약했지만, 이후 재개봉할 때마다 그리고 나중에는 TV를 통해 방영될 때마다 무지막지한 반향을 불러 일으키면서 이른바 킹콩 신드롬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무지하게 많은 분들이 저마다 이 王콩 신드롬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는데, 그 의견들이란 게 참으로 다양하고 기기묘묘해서, 王콩 = 흑인 남성의 상징으로 간주하여, 영화 <킹콩>은 백인 여자(앤 대로우)에 대한 흑인 남성의 성적 판타지라고 풀이한 분도 계신다. 까무잡잡한 王콩의 외모도 그렇지만, 그 왜, 일반적으로 흑인 남자들이 좀 크다고(?) 알려져 있잖아. 헐리웃에서 다루기 꺼려하는 타부 주제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의 사랑. 그런데 <킹콩>(1933)은 이 타부시 되던 주제를 과감하게 정면돌파 했다나 뭐래나.

각설하고, 1933년 오리지널 <킹콩>은 그 탄탄한 시나리오도 시나리오지만, 그 당시 최첨단 특수효과 기술이 총동원된 작품으로 이후 영화 제작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영향은 비단 헐리웃에 머문 것이 아니라, 심지어는 저 멀리 태평양 건너 일본에까지도 미쳐, 이른바 고지라로 대변되는 일본 특촬물 괴수영화는 이 <킹콩>을 모태로 한다.

아울러, 王콩은 어떤 때는 오마주 또 어떤 때는 단순 모방 형태로 여러 영화에 차용되기도 하는데, 이 포스트의 제목에 등장하는 - 그렇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 <플레쉬 고든 (Flesh Gordon)>도 그 중 한 작품.

영화 <플레쉬 고든>(1974)은 그 이름에서 풍기듯, 수퍼 히어로 만화 주인공 "플래쉬 고든(Flash Gordon)"을 패러디한 소프트 포르노급 B급 섹슈얼 판타지 SF 코미디 영화 되겠다. 2006년 블로그는 <킹콩>을 등에 업고, 이 영화와 함께 가볍게 시작.

어느 날, 지구에 섹스 광선이 날아든다. 그리고 이 광선을 쏘인 사람들은 극도로 흥분하여 주변 누구하고나 응응응을 하게 된다. 지구는 이 섹스 광선 땜에 난리가 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의 플레쉬 고든이 나선다. 플레쉬 고든은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나 섹스 광선 덕택에(?) 찐한 사이가 되어 버린 수잔과 독특한 개성의 과학자 저크오프(Jerkoff... 이름하고는 참) 박사와 함께 저크오프 박사의 우주선을 타고, 섹스 광선이 발사되는 포르노 행성으로 출발한다. 출발하자마자 섹스 광선을 맞는 바람에, 이들 세 사람은 우주선 안에서 찐한 쓰리썸을 하게 되고, 이를 통해 최강의(?) 팀웍을 다진다.

중국인들이 섹스를 밝힌다고 보았나, 포르노 행성의 지배자는 Emperor Wang 즉, 황제 왕. 엠페러 왕을 물리치고 이 행성을 폭파해야 지구가 섹스 광선에서 구출될 수 있다. 이름부터 포르노 행성이니,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는 여러분 상상에 맡기겠음. 앞에서 이 영화가 소프트 포르노급 B급 섹슈얼 판타지 SF 코미디라고 했잖아... 플레쉬 고든 일행의 활약으로 궁지에 몰린 엠페러 왕, 비장의 무기를 쓴다. 그리고 시작되는, 오늘의 주제, <킹콩> 패러디.

이 놈이 바로 王콩으로 패러디된 포르노 행성의 괴물.
플레쉬 고든 일행은 이 괴물이 나타나자 혼비백산 도망가는데, 아, 짜여진 각본대로, 여자 주인공 수잔이 그만 넘어지고 만다.
수잔을 한 손에 들어올린 괴물. 그리고 몸부리치며 비명을 질러대는 수잔.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그리고 이 때 카메라 뒤로 빠지면서 나타나는 거대한 탑. 포르노 행성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라고나 할까.
그 다음 괴물의 행동은 뭐겠어? 올라가야지요.
만세~ 다 올라왔다.
이 때, 저 밑에서는 플레쉬 고든과 저크오프 박사가 수잔을 구하기 위해 우주선을 출발. 그렇지, 王콩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올라갔으면, 비행기가 등장해야 하잖아.
탑 꼭대기에 올라온 괴물, 수잔을 데리고 논다.
그리고 괴물의 이 음흉한 눈빛을 보시라. 뭔가 다음 액숑이 있을 것 같지?
PJ의 <킹콩>에서는 빠졌지만, 오리지널 <킹콩>에서는 王콩이 앤 대로우의 옷을 벗기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도 이 장면 때문에 앞서 얘기한 흑인 남자의 백인 여자에 대한 성적 판타지 운운하는 영화평도 나온 듯 한데, 소프트 포르노급 B급 섹슈얼 판타지인 <플레쉬 고든>에서 어찌 이 장면을 그냥 넘어갈 수 있나. 벗겨야지.
이 때, 등장하는 플레쉬 고든의 우주선.
귀찮은 놈이 나타났군. 괴물, 수잔을 내려놓고 우주선과 싸울 준비를 한다.
괴물 주위를 맴돌던 플레쉬 고든의 우주선. 괴물에게 멋지게 한 방 먹이는데, 아, 이 폭탄의 이름이 무엇이더냐. 너무나 치명적이고 위험하다고 해서 전우주에서 사용금지를 시킨 바로 그 유명한 똥침 폭탄이 아니던가.
불의의 똥침에 괴로워 하는 괴물. 그리고 이 틈을 이용해서 플레쉬 고든은 수잔을 구한다.
수잔이 없어진 걸 눈치 챈, 괴물. 황급히 플레쉬 고든의 우주선을 낚아채려 하는데...
여기서 이 영화의 백미. 괴물이 미끄러지고 말아요. 정말 기가 막힌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괴물과 우주선의 싸움이 계속되면, 스톱모션이 왕창 더 필요하고, 그럼 필연적으로 제작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텐데, 이를 감안한 감독의 재치가 돋보이는 명장면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추락한 괴물. 쾅~ 폭발. 그리고 계속되는 추락.
괴물의 추락과 폭발은 결국 엠퍼러 왕의 성을 전부 폭파시켜 버리고...
엠페러 왕의 성이 폭파되어 버리자, 이제, 섹스 광선도 없어졌다. 해피한 플레쉬 고든 일행의 지구 귀환. 그리고 속편을 알리는 안내 자막과 함께 영화 끝. <플레쉬 고든>의 공동 감독이었던 하워드 짐은 실제로 15년이 지난 1989년에 <플레쉬 고든 2 (Flesh Gordon Meets the Cosmic Cheerleaders)>를 만들었다.

화면 캡춰: 코드 2 영국 출시 디븨디

by 8½이다 | 2006/01/02 11:10 | 영화를 봤는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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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브라질 at 2006/01/02 16:53
플레쉬 고든 이거 생각하면 아직도 울화통이 딥디에서 못받은것 중 하나가 Flash Gordon ...~~우린 왜 이런 영화가 좋죠...피터 잭슨도 너무한게 나오미 왓츠 팬티 한번 안보여주더군요 그렇게 이쁜 여자 쓰면서 어찌 그럴수 있나요...~~~
Commented by 8½이다 at 2006/01/04 10:13
ㅎㅎㅎ 마지막 멘트가 죽음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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